[백세시대 금요칼럼] 이석증을 앓다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이석증을 앓다 / 신은경
  •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 승인 2022.09.26 11:09
  • 호수 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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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일어나려 해도, 돌아누우려 해도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증상에

검진해보니 이석증 진단 나와

누워 자세 바꾸기 요법으로 효과

아프지 않고 눈뜨는 아침이 감사

어지러웠다. 누웠다 일어나려니 어지러웠고, 일어나 움직이다 누우려 해도 어지러웠다. 제일 심할 땐 자리에 누울 때, 누웠다 일어날 때, 돌아누울 때, 옆에서 누가 부른다고 고개를 홱 돌릴 때 등이다. 너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눈을 꼭 감고 머리통을 부여잡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눈을 살금살금 떠 본다. 기분이 엄청 나쁘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어지럼증은 이석증, 메니에르병, 뇌질환 등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원인도 잘 모르겠고, 저절로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심한 경우 더 큰 병은 아닌가 두려워 몇 일을 두고 보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일주일쯤 고생하다가 병원에 갔더니 먼저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했다. 어지러울 때 내가 도는 것 같으냐? 아니면 세상이 도는 것 같으냐? 묻는다. 잘 모르겠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을 때면, 눈을 꽉 감고 머리통을 부여잡고 몸을 새우같이 구부리고 얼마간 그렇게 멈춘 자세로 있는다. 그러면 어지럼증이 조금 사라지는데, 눈을 질끈 감은 내가 그걸 어찌 알아. 

어지럼증도 그렇고, 세상살이도 그렇고 어지러울 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가 돌고 있는지 세상이 도는지 분별해야 해답이 나오는가 보다.

진료가 시작됐다. 스키 고글처럼 생긴 3D 안경을 쓰게 하고 의자에 앉히더니 내 머리를 잡고, 45도 고개를 돌려 뒤로 팍 누인다. 그러잖아도 어지러운데 그렇게 확 뒤로 눕히니 어지러워 죽을 지경.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눈을 동그랗게 뜨란다. 그러면 그 안경을 통해 의사 선생님이 환자 눈의 움직임을 본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어느 한쪽으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이석증이란 진단이 나왔다.    

이석증.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이석이라는 조그만 돌이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내에 흘러 다녀, 자세를 느끼는 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해 생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심한 어지러움과 울렁거림, 구토 등을 유발한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외부충격, 골밀도 감소, 바이러스 감염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떨어져 나간 이석을 제자리로 돌리는 자세 교정 치료를 조금하고, 약과 운동법을 처방받았다. 어떤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를, 어떤 병원에서는 멀미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골밀도가 떨어져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이라고 비타민D 복용과 햇볕을 쬐는 산책을 권하기도 한다.

한참 증세가 심할 때 어머니 기일이어서 친정 동생들이 다 모였다. 요새 많이 어지럽다고 했더니 올케가 “어머니도 이석증으로 고생하셨어요. 심하실 땐 방바닥을 기어다니셨어요”라고 한다. 

난 왜 그걸 잊었지? 혈압이 높으셔서 지하철에서 코피가 터진 사고가 일어난 기억은 난다. 병원에선 코 혈관이 터진 것이 다행이라고, 뇌로 터졌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기억만 있었지, 엄마도 어지러웠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긴 내가 기억하는 게 무언들 남아있겠는가 싶다. 나는 생각보다 참 허술한 인간이어서 아주 중요한 일들은 다 잊어 버리고 아주 사소한 몇 가지 장면만 오래 붙잡고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벌써 20년쯤 전의 일인데, 요즘 같은 치료법이 있었다면 엄마도 고생 안하고 금방 고치지 않았었을까 싶다.

아픈 걸 친구들에게 널리 자랑했더니, 여러 가지 치료 방법과 병원 정보가 나왔다. 어떤 친구는 고개를 숙이고 코끼리 코처럼 만들어 몇 바퀴를 도는 걸 가르쳐 주기도 했다. 내가 받은 처방은 누워서 4분의 1 바퀴씩 방향을 바꾸어 2~3분씩 자세를 바꾸어 누워있는 것이다. 

하루에 3번씩 운동하듯 하라고 해서 실천해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요즘은 살짝 어지러우려고 하면 그 운동법으로 미리 자가 예방 치료를 해서 심각한 상황을 막기도 한다.

요즘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하는 이야기가 대략 몇 가지로 나뉜다. 대통령 이야기부터 시작해 정치 얘기로 열 올리는 사람들, 몸 아픈 이야기와 병원·영양제 이야기하는 사람들, 재산증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 드물게 연예계 이야기하는 사람들 등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 아픈 이야기, 병원 간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고 말았다.

그래도 덕분에 주변에 같은 증상으로 아픈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공감하고 치료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 문제 없이 눈을 뜨는 아침이 기적처럼 느껴져 감사하게 됐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어지럽지 않고, 허리 아프지 않고, 가슴 답답하지 않으면 오늘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날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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