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다다익선’ 가동 중단 4년만에 ‘화려한 쇼’
백남준 ‘다다익선’ 가동 중단 4년만에 ‘화려한 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0.04 13:19
  • 호수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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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념전 열어

 

4년간의 보수작업을 마치고 전시를 재개한 백남준의 ‘다다익선’. 보존을 위해 주 4일 하루 2시간씩만 가동될 예정이다.
4년간의 보수작업을 마치고 전시를 재개한 백남준의 ‘다다익선’. 보존을 위해 주 4일 하루 2시간씩만 가동될 예정이다.

높이 18m 초대형 작품, 과천관의 상징… 모니터 노후화로 잦은 문제

‘원형 최대한 유지’ 원칙 하에 부품 구해 737대 교체… 아카이브도 전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에는 거대한 ‘탑’ 하나가 들어선다. 높이만 18m가 넘는 이 탑이 바로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다. ‘다다익선’은 중앙홀의 회오리 계단을 오르내리며 감상할 수 있는 과천관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 된다. 하지만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후화를 피할 수 없었고 부분수리를 반복하다 2018년 2월 전면 재보수를 이유로 전시가 중단된다.

4년여의 긴 공백기를 가졌던 다다익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9월 15일부터 다다익선을 재가동하고 이를 기념하는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을 내년 3월 26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이어서 재가동의 의미가 더 크다.

1986년 과천관 개관을 앞둔 국립현대미술관은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한다. 과천관 중앙홀 램프코어(각 전시장을 연결하는 나선형 공간)에 놓을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거대한 토목점을 운영하던 부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했던 가정 형편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195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1956년부터는 독일 뮌헨 부르비하막시밀리한 대학교에서 음악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독일로 건너간 백남준은 ‘플럭서스’ 운동에 뛰어든다. 플럭서스는 라틴어로 ‘흐름’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형식을 싫어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예술 게릴라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특히 백남준은 텔레비전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계와 대중문화, 상업자본주의와 광고 등의 개념을 예술로 끌어들이며 독일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1984년 1월 1일,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했던, 그 유명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전 세계에서 약 250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는 기념비적인 위성쇼로 당시 국내에서도 생중계돼 그때까지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백남준을 일순간 천재 아티스트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러한 백남준의 예술성을 인정해 작품을 의뢰했고 그는 과천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원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 이렇게 탄생한 다다익선은 높이 18.5m의 탑처럼 쌓은 구조물(설계 김원) 위의 5~25인치 브라운관(CRT) 모니터 1003대(10월 3일 개천절을 의미)를 통해 8개의 영상작품을 상영한다. 영상은 경복궁·부채춤·고려청자 등과 프랑스 개선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적 상징물,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의 연주 모습 등을 담고 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인류가 예술과 과학기술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철학을 응축한 작품이다.

다만 설치 때부터 기자재 노후화 등에 따른 보존문제를 안고 있었다. 작품의 핵심인 CRT 모니터 등 부품 대다수가 제작 당시엔 첨단이었지만 기술 발전 등에 따라 구시대 소재가 돼 단종이 불가피했다. 실제로 2000년대 들면서 노후화가 가속화돼 화재, 누전 사고도 일어났다. 2003년엔 단종된 모니터를 어렵게 구해 대대적 교체를 했지만 수리가 반복됐고 결국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미술관은 국내외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2019년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복원을 어디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세계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만큼 ‘복원해야 한다’부터 ‘최신 기술을 적용해 업그레이드하자’ ‘아예 해체·철거하자’는 견해까지 나오면서 미술계 안팎의 논란이 뜨거웠다.

결국 복원에 힘이 실리자 이번에는 어느 범위·수준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CRT 모니터의 특별 주문 제작, 최신 기자재로 전면 교체, 모니터 틀은 유지한 채 내부 브라운관만 교체 등의 방안이 쏟아졌다. 일부에선 브라운관 특유의 볼록한 화면을 평면 화면으로 바꿀 경우 작품의 원형이 훼손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결국 보존·복원은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기준 아래 진행됐다. 정밀 진단 후 중고 모니터·부품을 구해 손상된 모니터 737대를 수리·교체했다. 더는 사용이 어려운 6·10인치 모니터 266대는 외형은 유지하되 최신 평면디스플레이(LCD)로 교체했다. 냉각설비를 보완하고 보존환경도 개선했다.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가동시간을 주 4일, 일 2시간(잠정)으로 제한하되 작품 상태를 최우선으로 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다익선’ 재가동과 함께 설치 배경부터 완공, 현재까지 운영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아카이브 200여 점과 구술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해 ‘다다익선’이 설치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각종 자료를 통해 소개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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