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81] 옛날이 지금에게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81] 옛날이 지금에게
  • 조화이 화정중학교 교사
  • 승인 2022.10.17 09:34
  • 호수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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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 지금에게

지금 천년도 전의 옛 사람을 벗하고자 하는데 우선 나의 도가 저 선인과 같지 않아서야 될 수 있겠는가. 곧 ‘상우’의 도는 그 근본이 역시 나의 몸을 수양하는데 있음을 알겠다.

今欲尙友千古之人 (금욕상우천고지인)

而不先使吾道與彼同乎 (이불선사오도여피동호)

是知尙友之道 (시지상우지도)

其本亦在於修我躬 (기본역재어수아궁)

- 윤선도(尹善道, 1587 ~ 1671), 『고산유고(孤山遺稿)』「尙友賦」


수치적 성장, 양적인 발전만을 추구하며 항상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에서, 요 몇 년 간 레트로(Retro)가 유행이다. 수요가 거의 없어 자취를 감추었던 레코드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책 표지부터 과자 포장지까지 앞다투어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하는 옛 디자인으로 되돌아간다. 타자기로 편지 작성을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는가 하면 최신 가요에 민감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30년도 더 지난 노래를 찾아 듣는 것이 오히려 유행이란다.

레트로의 사전적 정의는 ‘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좇아 하려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니, 따져보면 일종의 복고주의(復古主義)이다. 이렇게 보니 레트로라는 말이 한결 친숙해진다.(중략)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 사회가 과거를 돌아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일견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다시 만난 옛날의 친숙함에 열광할 줄만 알고, 지금을 바쁘게 사느라 그 의미를 돌아보지 않는 모습은 아쉽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옛날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을 사는 존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상우부(尙友賦)』를 쓴 윤선도이다.

‘상우(尙友)’란 맹자(孟子)가 말한 것으로 책을 통해 옛 선사(善士)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건을 넘어 사람을 사귀는 것마저도 옛사람을 고집했으니 레트로 중의 레트로다. 윤선도는 이 상우(尙友)에 대해 “마음(心)을 벗하는 것이지 겉모양(面)을 벗하는 것이 아니다.[友其心也 非友其面也]”라고 정의한다. 이어 대상의 본질인 선한 마음이 자신의 본질이 되어야 하므로 결국 尙友(상우)는 자기 자신의 수양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윤선도의 ‘옛날 배우기 안내서’를 지금에 적용해 보면 그저 옛것을 흉내 낸 물건을 소유하며 기쁨을 느끼는 데 그치는 레트로는 가짜다. 진정한 레트로란 느린 속도로 정성을 다해 생활했던 순간들을 마음속에 되살려 당시 순박했던 정서를 우리 일상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손수 적은 카드 한 통으로 진심을 전달할 줄 알고, 느리게 걷는 내 친구 곁에서 조급함을 버릴 줄 아는 모습, 이런 본질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레트로라는 유행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옛(古) 사람 윤선도는 지금(今)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부터 ‘진짜 레트로’를 시작하라고.    

조화이 화정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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