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19] 비색(緋色)은 삼국시대부터 고관들이 입던 옷의 색
[한국의전통色이야기 19] 비색(緋色)은 삼국시대부터 고관들이 입던 옷의 색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
  • 승인 2022.10.24 10:47
  • 호수 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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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승비옥(遽陞緋玉)

거승비옥(遽陞緋玉)의 비옥(緋玉)은 비(緋)색 옥(玉)을 가리킨다. 색명으로서 비(緋)색은 실물이 없어 정확한 색의 특성을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밝은 홍적(紅赤)색’ 또는 황색 띤 밝은 심홍색(深紅色)과 유사하지만 사용된 복색과 염색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다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비범(緋帆)-천기(茜旗)는 비(緋)색 돛과 천(茜)색 깃발인데, 모든 출판 번역본에는 ‘붉은 돛 붉은 깃발’ 로 표현되어 있다. 돛의 붉은색과 바람에 펄럭이는 붉은 깃발의 붉은 색은 누가 보아도 다른 색이므로 <삼국유사>의 저자 역시 비(緋)색과 천(茜)색으로 구별했을 것이다. 

“다홍(多紅) 비단(緋段)으로 치마를 만들고,”<숙종 27년>라고 기록된 비단(緋段)의 비(緋)는 비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명주로 짠 피륙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비(緋)색은 상의(衣), 도포(袍), 문라(文羅: 무늬비단)도포, 적삼(윗도리), 배자(背子), 착의(窄衣: 좁은 옷), 견고(絹袴: 비단바지) 등의 복색과 비라(緋羅: 비색 비단), 비추(緋縐: 비색 주름비단) 등의 색명으로 사용되었다. 

거승비옥, 갑작스런 ‘고관 승진’

◎일찍이 재천(在天)의 선녀들을 부리어 비단을 짜게 하고 비(緋)색을 염색해서 조정의 의복을 만들어 그의 남편에게 주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그의 신령한 영험을 알게 되었다.<삼국유사> 

비(緋)색은 삼국시대부터 고위관직의 공복(公服)색이었다. 일반백성은 비의(緋衣)와 자의(紫衣)를 입지 못한다고 하였다.<백제 고이왕> 

백제, 신라, 고려 때에는 두 번째로 높은 복색이었고, 조선 태종과 영조 때에는 첫 번째로 높은 복색이었으므로 비(緋)색은 곧 고위관직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거승비옥(遽陞緋玉)의 거승(遽陞)은 갑자기 오른다는 뜻으로서 거승비옥(遽陞緋玉)은 갑자기 고위관직으로 승진한다는 뜻이다. 

◎기록할 만한 공로도 없는데 단지 성이 다른 일가의 신하로서 거승비옥(遽陞緋玉)의 반열에 발탁하셨으니 승급의 명을 거두시는 것이 마땅합니다.<숙종 44년> 

◎사람이 음험하고 간사하며 얼굴단장을 좋아하여 날마다 여러 번 낯을 씻고 목욕을 하고 분을 바르며, 눈썹도 뽑았으며, 의복과 음식이 모두 보통 사람과 다르니 당시에 그를 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 때에 따라 얼굴을 바꾸어 거승비옥(遽陞緋玉)에 이르렀으나 같은 조정신하들이 반열에 함께 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숙종 44년> 

◎근래 포상제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약간의 병장기를 수리해 고쳤을 뿐인데 어찌 갑자기 비옥(緋玉)의 벼슬을 할 수 있겠습니까<영조 15년> 

이밖에 비옥(緋玉)은 ▷남제비옥지반(濫躋緋玉之班: 분수에 넘치게 비옥의 반열에 오름), ▷위지비옥(位至緋玉: 직위가 비옥에 이름), ▷획제비옥지열(獲躋緋玉之列: 비옥의 반열에 잘못 승진), ▷비옥만로(緋玉滿路: 고위관직이 거리에 가득), ▷곤도비옥지반(輥到緋玉之班: 빠르게 비옥의 반열에 오름)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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