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시 한 편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
[백세시대 / 세상읽기] “시 한 편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10.24 10:52
  • 호수 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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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가슴이 허하고 사랑의 갈증을 느끼는 어르신들에게 사연 많은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저 거리의 암자’.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을 이기지 못하던 50대 후반의 여인이 종종 들르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홀짝이며 지은 시다.

“어둠 깊어 가는 수서역 부근에는/트럭 한 대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주인과 손님이 함께 야간 여행을 떠납니다/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속풀이 국물이 짜글짜글 냄비에서 끓고 있습니다/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젓가락으로 집던 산 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 내지 못합니다/답답한 것이 산 낙지뿐입니까/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 버린 여자도/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 냅니다/비워진 소주병이 놓인 플라스틱 작은 상이 휘청거립니다/마음도 다리도 휘청거리는 밤거리에서/조금씩 비워지는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한 채의 묵묵한 암자입니다/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거둬 냅니다/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모산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 데 속을 쓸어내리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시인은 자신과 노동자들과 포장마차 주인의 고단하고 신산한 삶을 불자의 수행에, 이들이 모인 포장마차를 도를 닦는 암자에 빗대 인간사 고뇌와 번뇌를 노래했다. 

이 시를 쓴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류시인 신달자(79)씨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신씨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00년 남편이 세상을 뜨고 우울증이 심하니 의사가 등산을 권해서 대모산 근처 수서로 이사를 갔습니다. 수서역 주변에 포장마차가 많았는데, 거기 가서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한잔씩 먹곤 했습니다. 그때 포장마차를 소재로 ‘거리의 암자’를 썼습니다. 백담사에 계셨던 스님이 저를 찾는다기에 만났는데, 여러 스님들 앞에서 ‘여러분들 3개월 수행한 것보다 이 시 한 편이 더 불경에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시가 잘되지 않아서 절망하고 있던 저를 그 말씀이 살렸습니다.”

백담사에 계셨다는 스님이 바로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1932 ∼2018년)이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祖室)이었던 무산 스님은 호방한 언행으로 ‘무애(無碍)도인’으로 불렸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사상을 잇는 일에 힘써 만해마을과 만해축전, 만해대상을 만들었다. 올해 26회째인 만해대상은 첫 회부터 조선일보와 공동주최해오고 있다.

이렇게 맺어진 시인과 스님의 인연은 스님의 입적 전까지 이어졌다. 시조의 대가이기도 했던 스님은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를 즐기고 남모르게 후원했다. 신씨는 “문단 곳곳 음지에서 겨우 눈 뜨고 살아가는 문인들의 손을 잡아주신 분”이라고 표현했다.

무산 스님은 노인사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한노인회 인제군지회에 월 100만원씩 수년간 지원했다. 하안·동안거 해제 법회에 노인회장을 초청해 옆 자리에 앉게 하고 식사를 함께 했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자 인제군지회에 5억원이란 거액을 내놓기도 했다. 

인제군지회는 고마움의 표시로 노인회관 정문 앞에 무산 스님의 시조비를 세웠다. 최근 무산 스님의 화합과 상생의 정신을 선양하는 문화예술공간인 무산선원이 서울 북악산 자락 삼청각 옆 홍련사를 리모델링해 들어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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