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슬픔을 이겨내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 김광일
[백세시대 금요칼럼] 슬픔을 이겨내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 김광일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 승인 2022.11.14 11:35
  • 호수 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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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듯하지만

안전장치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 새겨야

세상을 살다 보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생긴다. 우리도 많은 비극을 경험했다.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고, 한강 다리가 끊겨 학교와 직장으로 향하던 많은 이들을 잃었다. 수련원에서 화재가 나서 잠을 자던 유치원생들이 깨어나지 못했고, 수학여행을 가던 젊은 학생들을 제대로 구조해내지 못하고 TV를 통해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올 10월의 마지막 주에 또다시 믿기 어려운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많은 건강한 젊은이들이 사람들에 깔려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장난 또는 오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사망자를 이송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도 핼러윈을 맞이하여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들도 실제상황이라고 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는 당시의 상황은 더욱더 참혹했기에 혹시라도 희생자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영상을 접했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병원에서 응급상황을 많이 겪었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참혹한 느낌을 가지게 될 듯 하다. 

특히 이번 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생각해 본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경우를 참혹할 참(慘)에 슬플 척(慽)을 써서 ‘참척’이라고 한다. 직접적 표현 대신 간접적이고 완곡하게 ‘너무나도 참혹하고 슬픈 감정’으로 돌려 말하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이 세상 그 어떤 슬픔보다도 크고 괴로울 것이다. 이순신 장군도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낙담하여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하도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못하실 수가 있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게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것은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인가.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보인다. 슬프다! 내 작은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전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진료실을 찾은 고령의 환자분들 중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경험한 후 급격하게 건강 상태가 나빠진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본인의 나이도 적지 않고 관리해야 할 질환도 간단하지 않은데, 갑자기 자식을 잃게 되면 그동안 잘 유지했던 건강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된다.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인해 식사량이 줄어들고 복용해야 하는 약도 제대로 드시지 않기 때문에 혈액검사 수치는 몹시 나빠진다. 외래에서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다시 이전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설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중증의 질환을 진단받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그나마 조금 낫지만 갑작스럽게 사고사 또는 돌연사하는 경우 부모가 받을 충격은 너무나도 클 것이다. 이번 사고로 슬픔에 잠겨 있을 피해자 가족과 친지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즐겁고 기쁜 일이 있어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현명한 왕자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 슬픔을 겪는 분들에게는 결코 와닿지 않는 말이라 생각된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은 더욱 커지고 무겁게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 제대로 국가 안전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스위스 치즈모델’이 있다. 불규칙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 스위스 치즈 조각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모든 구멍들이 일렬로 정렬될 수가 있고 바로 그때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듯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안전장치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 사고는 발생한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조심하고, 안전에 관해서는 최대한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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