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시벨’ “소음 심해지면 더 빨리 터지는 시한폭탄을 막아라”
영화 ‘데시벨’ “소음 심해지면 더 빨리 터지는 시한폭탄을 막아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1.14 14:17
  • 호수 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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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소음 반응 시한폭탄’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긴장감을 제공한다. 시한폭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도영’ 역할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김래원의 모습.
이번 작품은 ‘소음 반응 시한폭탄’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긴장감을 제공한다. 시한폭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도영’ 역할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김래원의 모습.

좌초된 잠수함에서 기적적으로 귀환한 해군 영웅과 테러범의 대결

은폐하려는 정부와 살아남은 자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中)

북한 어뢰를 피하다 좌초된 잠수함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강도영’(김래원 분) 중령은 해군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묘한 전화가 걸려온다. “소음이 커지면 터진다”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함께 생환한 전우의 집이 폭발했다는 뉴스 속보를 접한다. 전화 속 목소리는 강도영에게 자신이 지시한 대로 하지 않으면 무차별 테러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결국 그는 테러범과의 목숨을 건 게임에 휘말린다. 

주변 소음이 커지면 터지는 폭발물을 설치한 테러범과 이를 막기 위한 해군 장교의 대결을 다룬  ‘데시벨’이 11월 16일 개봉한다. 이번 작품은 좌초된 잠수함에서 벌어진 사건과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한 강도영의 고군분투를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테러범이 강도영에게 다음 폭탄을 설치한 곳으로 지목한 곳은 수많은 관중들로 가득 찬 축구경기장이었다. 게다가 그가 설치한 시한폭탄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소음에 반응해 일정 데시벨을 넘기면 남아있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이들로 가득 찬 아파트 놀이터,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찬 워터파크 등을 테러 장소로 지목해 강도영을 심리적으로 옥죄어간다. 각고의 노력 끝에 범인의 진상에 다가간 그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마저 엮이면서 그의 하루는 점점 꼬여만 간다. 

이번 작품은 닳고 닳은 소재인 ‘시한폭탄 테러’에 ‘소음에 반응하는 폭탄’이라는 설정을 더해 기존 폭탄테러물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폭탄을 제거하는데 여유 있던 시간이 주변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반으로 뚝뚝 줄어들 때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두근거림은 두 배로 빨라진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부터 관중들의 환호성, 녹슨 문을 여는 소리까지 일상 속 평범한 소리가 폭발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에 극의 긴장감은 커진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러한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도영의 활약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축구장에서 우연히 만나 테러 저지에 동행하는 ‘오대호’(정상훈 분) 기자와의 호흡도 빛난다. 두 사람이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브루스 윌리스와 사무엘 잭슨의 협업이 빛났던 ‘다이하드3’(1995)를 연상케 한다. 이 과정에서 김래원은 복잡한 속내를 가진 강도영이란 캐릭터를 특유의 카리스마로 표현하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정상훈도 감초 같은 코믹연기로 활력을 불어넣는다.

반면 작품의 후반부는 ‘소음 때문에 시간이 절반씩 줄어드는 폭탄’을 만들어야 했던 테러범(이종석 분)의 숨겨진 사연을 보여주는데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영화들이 테러범을 단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테러범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테러범의 선택을 이해하게 하는데는 이종석의 힘이 컸다. 앞서 ‘브이아이피’(2017), ‘마녀 Part2. The Other One’(2022) 등을 통해 악역에 눈을 뜬 이종석은 이번 작품에서 정점을 찍는다. 광기와 슬픔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속죄와 단죄를 위해 테러범이 돼야 했던 인물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국가의 무능과 은폐’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다. ‘국가의 무능과 은폐’는 ‘시한폭탄 테러’ 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소재이다. 잠수함이 좌초되면서 수십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군은 이를 은폐하고 조직적인 ‘강도영 영웅 만들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 한다. 수뇌부 중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테러 사건마저도 강도영이 벌인 일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마치 상황과 역할만 바꿔 2022년 11월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일을 예측한 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강도영을 비롯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스크린 밖으로 보다 선명하게 전달된다. 극장을 나설 때는 브레히트가 쓴 명시의 마지막 행이 생각날 정도로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살아남은 자의 슬픔’ 中)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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