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시 부여군지회장을 기리며…“늘 베풀기만 했던 어르신… 정도, 부끄러움도 많아”
민병시 부여군지회장을 기리며…“늘 베풀기만 했던 어르신… 정도, 부끄러움도 많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12.19 13:55
  • 호수 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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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정이 많아 남에게 싫은 내색을 잘 못하고…생활력이 강한 분이었다.”

유명을 달리한 민병시 대한노인회 충남 부여군지회장의 지인들은 생전의 고인을 이렇게 기억했다. 고인은 직원들에게 직장상사에 앞서 집안의 온화한 어른 같은 존재였다. 

고인을 9년간 모셨다는 강은숙 부여군지회 총무부장은 “우리들을 큰소리로 야단치는 법도 없고, 설령 외부사업을 잘 따오지 못한 경우에도 꾸짖기 보다는 ‘어떻게 좀 해봐’라고 말씀하시는 정도”라며 “많은 어르신들이 참석한 노인일자리 교육 때 제가 목소리를 높였던 일을 두고도 ‘조금 더 친절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주의를 주시는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고인은 일상생활에서 누구보다 강인하고 빈틈없는 구석을 보였다. 이웃마을에서 70여년을 살며 고인을 가까이 지켜본 강병구 부여읍분회장(82)은 “일곱 살 어린 저보다 농사 규모가 더 크고, 더 잘 짓는 걸 보고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한 때 3만평을 경작해 ‘연소득 1억대 농부’란 말을 듣기도 했다.

강 분회장은 “고인은 부여군지회장으로, 저는 지회의 감사로 같이 봉사했다”며 “감사에서 지적할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빈틈없이 관리를 잘 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성청농고 축산과를 졸업하고 부여농협 초대 참사로 들어가 2대 조합장을 지냈다. 대한노인회 부여읍 분회장을 거쳐 2014년, 2018년, 2022년에 잇따라 3번 지회장에 당선됐다. 

부여군지회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노인일자리를 수행하는 지회 중 하나다. 무려 2000개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일자리를 맡기까지 고인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고인과 함께 노인회 봉사에 첫발을 디딘 조희균 부여군지회 사무국장은 “처음엔 공동작업장 하나뿐으로 노인일자리가 하나도 없었다”며 “지회장님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부분이 노인일자리 확대”라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부여군수와 공무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어떠한 일이라도 달라’, ‘다른 데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면 잘 할 수 있다’며 협조를 구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분회장과 경로당 회장들의 무한 봉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노심초사했다. 도지사, 군수, 군의회 의장, 국회의원 등 만나는 이마다 붙잡고 활동비 지원을 요청했다. 그 결과 부여군지회는 새해부터 분회장과 경로당 회장들에게 지역봉사지도원 명목으로 활동비를 지급하게 됐다. 

강 분회장은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결실을 회장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고 먼저 가셔서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며 “최근 군청에서 16억여원을 들여 새로 지어준 노인회관도 고인의 집념이 아니었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남에게 베푸는 일에도 앞장섰다. 지회 사상 처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부여군수를 찾아가 쌀 250포를 기증한 것을 비롯해 눈을 감는 순간까지 소외된 이웃과 지인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고인은 하우스 6개동에 수박, 멜론, 시금치, 배추 등을 경작했다. 새벽 4시에 눈 뜨자마자 밭을 살피고 집으로 돌아와 양복으로 갈아입고 지회에 출근했다가 퇴근 후 다시 밭으로 달려갔다. 그런 고인을 두고 주변에선 “농사와 지회 밖에 모르는 분”이라고 했다.

올해도 고인은 어김없이 수확한 농작물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눴다. 승용차에 배추를 싣고 다니며 만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달하며 “별거 아니다” “부끄럽다”고 말하곤 했다. 

작년에 대한노인회 한석 안필준 공로상을 수상했을 때도 고인은 “다른 분이 수상해야 마땅한데 제가 받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수확한 농산물을 함께 나눠 먹으면 기쁨도 배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인은 최근에도 밭에 나갈 정도로 건강했다. 지난 10월, 네 번째 코로나 백신접종 직후 갑자기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이후 가볍게 여겼던 감기 증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으나 일주일여 만에 급성폐렴으로 12월 8일 새벽 3시 20분, 눈을 감았다. 유족으로 부인과 1남 3녀가 있다. 향년 89세. 

부여군수, 노인회 임직원, 마을주민 등 500여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아 밤늦도록 생전의 고인을 회상하며 명복을 빌었다. 발인 날 부여군지회 회관 앞에서 지낸 노제에 부여군수와 박수현 전 국민소통수석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빌기도 했다.

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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