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택·이완석 자료 중심으로 광복 이후 산업미술의 탄생 과정 등 소개
강렬하게 표현된 ‘해방’ 포스터, 정체성 고민 담긴 작품 ‘디자인’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도안, 산업미술, 생활미술, 응용미술, 그리고 장식미술까지. ‘디자인’이 아직 ‘미술’이랑 분리되기 이전 함께 혼용되던 용어들이다. 국내 최초의 디자인 단체 ‘조선산업미술가협회(현 대한산업미술가협회)’의 창립을 주도한, 한국 디자인의 선구자인 한홍택(1916~1994)이 1958년 개최한 전시회도 ‘데자인’ 전이었다.
광복 이후 ‘도안’에서 ‘데자인’을 거쳐 ‘디자인’으로 완전히 통용되기까지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26일까지 진행되는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에서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수집된 한홍택의 작품과 자료들, 그리고 올해 기증된 이완석(1915~1969)의 자료들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디자인의 태동과 전개를 조망한다. ‘모던 데자인’은 ‘제2회 한홍택 모던 데자인전’에서 발췌한 이름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한홍택의 기록부터 산업미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제안과 실험을 엿볼 수 있는 포장, 책표지, 도안 등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 작업들을 소개한다. 또한, 1950~60년대 도시 풍경 속 간판, 옷차림 등이 기록된 사진 및 영상을 통해 국가재건시기 우리 생활상에 녹아있는 당대 시각문화를 다각도로 살핀다.
먼저 1부 ‘미술과 산업: 산업미술가의 탄생’에서는 한홍택의 일본 유학시기를 비롯해 조선산업미술가협회(이하 산미협회)의 창립과 해방 전후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 산미협회는 1946년 5월 창립전 ‘조국광복과 산업부흥전’을 개최하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정기적인 회원전을 통해 ‘산업건설’, ‘올림픽’, ‘관광’ 등 사회적 현안과 시의성 있는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한홍택이 1945년에 제작한 ‘해방’ 포스터다. 당시 대중과 소통하는 도구로서 가장 강력한 매체였던 포스터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해방 8‧15’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Korea Vibrates In New Era)이라는 문구와 함께 힘껏 움켜쥔 손으로 사슬을 끊어내는 이미지를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부 ‘모던 데자인: 감각하는 일상’에서는 전후 사회 복구와 민생 안정을 위해 들어온 미국의 원조물자로부터 접하게 된 서구식 문화와 물질, 현대적 삶을 지향하는 대중의 욕망이 투사된 사물과 이미지, 일상의 풍경을 다룬다.
이 당시 화장품, 술 광고 포스터와 잡지 표지 등에는 여성이 전면으로 내세워져 있는데, 서구적 미인이 주인공으로 다수 등장한다. 한홍택이 디자인한 1961년 ‘가정생활 5월호 표지’ 등을 보면 보다 개방적인 주체로서 여대생, 일하는 여성, 중산층 주부 등 당시 지향했던 여성상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영수(1933~1999)의 사진들은 정비되지 않은 골목과 상점의 진열장, 손글씨로 만든 각양각색의 간판, 거리의 매대에 놓인 잡지 등 1950~1960년대 풍경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3부 ‘정체성과 주체성: 미술가와 디자이너’에서는 미술가와 디자이너,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녔던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한다. 한홍택은 ‘한홍택 산미 개인전’(1952)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개인전을 통해 ‘데자인’, ‘디자인’, ‘그라픽아트’, ‘시각언어’ 등 여러 용어를 도입하며 분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미술 단체의 참여와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의 활동도 병행했다
‘제2회 한홍택 모던 데자인 전’에 전시된 ‘디자인’은 이런 고민이 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모형자와 콤파스, 원과 사각형 등 단순화되고 평면적인 조형 요소들이 교차하는 추상적 이미지를 활용하는데 이는 기존 회화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와 함께 화가로 주목받다 산업미술가로서 입지를 확장했던 문우식(1932~2010)의 작품도 소개한다.
마지막 ‘관광과 여가: 비일상의 공간으로’에서는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과 현대적 시각화를 시도한 산물인 산업미술가들의 관광포스터 원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정부는 1961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정해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여가문화의 확산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지역 명소로의 여행이 일상이 되던 시기였다. 전시에서는 ‘경주’, ‘제주도’, ‘강원도’ 등 지역을 주제로 한 관광포스터전에 출품된 당시 산업미술가들의 포스터를 소개한다. 대표적으로 이완석의 ‘제주목장’(1963)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소를 몰고 있는 목동들의 목가적인 풍경을 담고 있는데 지금의 발전된 제주도와는 다른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