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모던 데자인’ 전…‘데자인’이 ‘디자인’이 되기까지 한국 산업미술 조명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모던 데자인’ 전…‘데자인’이 ‘디자인’이 되기까지 한국 산업미술 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2.19 14:58
  • 호수 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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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한국 디자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한홍택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광복 이후 우리나라 산업 미술의 발전과정을 조망한다. 사진은 전시장 내부의 모습.
이번 전시는 한국 디자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한홍택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광복 이후 우리나라 산업 미술의 발전과정을 조망한다. 사진은 전시장 내부의 모습.

한홍택·이완석 자료 중심으로 광복 이후 산업미술의 탄생 과정 등 소개 

강렬하게 표현된 ‘해방’ 포스터, 정체성 고민 담긴 작품 ‘디자인’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도안, 산업미술, 생활미술, 응용미술, 그리고 장식미술까지. ‘디자인’이 아직 ‘미술’이랑 분리되기 이전 함께 혼용되던 용어들이다. 국내 최초의 디자인 단체 ‘조선산업미술가협회(현 대한산업미술가협회)’의 창립을 주도한, 한국 디자인의 선구자인 한홍택(1916~1994)이 1958년 개최한 전시회도 ‘데자인’ 전이었다. 

광복 이후 ‘도안’에서 ‘데자인’을 거쳐 ‘디자인’으로 완전히 통용되기까지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26일까지 진행되는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에서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수집된 한홍택의 작품과 자료들, 그리고 올해 기증된 이완석(1915~1969)의 자료들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디자인의 태동과 전개를 조망한다. ‘모던 데자인’은 ‘제2회 한홍택 모던 데자인전’에서 발췌한 이름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한홍택의 기록부터 산업미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제안과 실험을 엿볼 수 있는 포장, 책표지, 도안 등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 작업들을 소개한다. 또한, 1950~60년대 도시 풍경 속 간판, 옷차림 등이 기록된 사진 및 영상을 통해 국가재건시기 우리 생활상에 녹아있는 당대 시각문화를 다각도로 살핀다.

먼저 1부 ‘미술과 산업: 산업미술가의 탄생’에서는 한홍택의 일본 유학시기를 비롯해 조선산업미술가협회(이하 산미협회)의 창립과 해방 전후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 산미협회는 1946년 5월 창립전 ‘조국광복과 산업부흥전’을 개최하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정기적인 회원전을 통해 ‘산업건설’, ‘올림픽’, ‘관광’ 등 사회적 현안과 시의성 있는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한홍택이 1945년에 제작한 ‘해방’ 포스터다. 당시 대중과 소통하는 도구로서 가장 강력한 매체였던 포스터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해방 8‧15’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Korea Vibrates In New Era)이라는 문구와 함께 힘껏 움켜쥔 손으로 사슬을 끊어내는 이미지를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정생활 표지
가정생활 표지

2부 ‘모던 데자인: 감각하는 일상’에서는 전후 사회 복구와 민생 안정을 위해 들어온 미국의 원조물자로부터 접하게 된 서구식 문화와 물질, 현대적 삶을 지향하는 대중의 욕망이 투사된 사물과 이미지, 일상의 풍경을 다룬다.

이 당시 화장품, 술 광고 포스터와 잡지 표지 등에는 여성이 전면으로 내세워져 있는데, 서구적 미인이 주인공으로 다수 등장한다. 한홍택이 디자인한 1961년 ‘가정생활 5월호 표지’ 등을 보면 보다 개방적인 주체로서 여대생, 일하는 여성, 중산층 주부 등 당시 지향했던 여성상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영수(1933~1999)의 사진들은 정비되지 않은 골목과 상점의 진열장, 손글씨로 만든 각양각색의 간판, 거리의 매대에 놓인 잡지 등 1950~1960년대 풍경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3부 ‘정체성과 주체성: 미술가와 디자이너’에서는 미술가와 디자이너,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녔던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한다. 한홍택은 ‘한홍택 산미 개인전’(1952)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개인전을 통해 ‘데자인’, ‘디자인’, ‘그라픽아트’, ‘시각언어’ 등 여러 용어를 도입하며 분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미술 단체의 참여와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의 활동도 병행했다

‘제2회 한홍택 모던 데자인 전’에 전시된 ‘디자인’은 이런 고민이 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모형자와 콤파스, 원과 사각형 등 단순화되고 평면적인 조형 요소들이 교차하는 추상적 이미지를 활용하는데 이는 기존 회화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와 함께 화가로 주목받다 산업미술가로서 입지를 확장했던 문우식(1932~2010)의 작품도 소개한다.

마지막 ‘관광과 여가: 비일상의 공간으로’에서는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과 현대적 시각화를 시도한 산물인 산업미술가들의 관광포스터 원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정부는 1961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정해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여가문화의 확산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지역 명소로의 여행이 일상이 되던 시기였다. 전시에서는 ‘경주’, ‘제주도’, ‘강원도’ 등 지역을 주제로 한 관광포스터전에 출품된 당시 산업미술가들의 포스터를 소개한다. 대표적으로 이완석의 ‘제주목장’(1963)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소를 몰고 있는 목동들의 목가적인 풍경을 담고 있는데 지금의 발전된 제주도와는 다른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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