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사랑, 손주 자랑 수기부문 3등] 2012년 여름, 뜨거웠던 미국 캠핑기
[손주 사랑, 손주 자랑 수기부문 3등] 2012년 여름, 뜨거웠던 미국 캠핑기
  • 정신종 제주 제주시
  • 승인 2022.12.19 15:17
  • 호수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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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간 미국 여행하며 키운 외손주들과의 사랑

정신종 제주 제주시
정신종 제주 제주시

2012년 8월 아내와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났다. 낯선 땅으로 출국하는 길에는 반가운 동행이 있었다. 딸과 외손녀, 외손자가 함께한 것이다. 아쉽게도 사위는 바쁜 직장일로 인해 함께하지 못했다.

딸은 제주에서 1남 1녀를 출산했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로 인해 우리 부부는 외손주들과 이렇다 할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미국에 정착한 아들의 초청으로 보름간 캠핑카를 타고 미국 서부 여행을 함께하며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기회를 얻게 됐다.

아들은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캘리포니아 소재 IBM에 입사하며 미국으로 떠났다. 우리보다 먼저 곳곳을 돌아본 아들은 여행 가이드를 자처하며 캠핑카부터 세부 일정표까지 모두 준비해놓았다.

아내와 아들과 딸, 그리고 외손녀, 외손자까지 6명이 함께하는 캠핑의 첫날은 야영지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소고기를 비롯해 각종 음식을 모처럼 손주들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국땅이 낯선 할아버지‧할머니와 달리 사위를 따라 말레이시아에서 5년간 살아본 경험이 있던 외손주들은 마치 한국땅을 여행하는 듯 거리낌이 없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도 척척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이렇게 든든한 자식‧손주들과의 첫 방문지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다. 높이 1000미터의 거대한 화강암이 수직으로 솟아 있는 기암절벽과 계곡 곳곳에서 시원한 물살을 쏟아내는 폭포는 놓칠 수 없는 볼거리였다.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수영하고 자전거를 타고 놀던 손자가 무릎을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휴대폰까지 분실하면서 울상이었다. “개구쟁이 노릇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타일러주자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린 듯했다.  

미국 남서부 지역의 서쪽에 있는 네바다 주 남부 모하비 사막 가운데에 세워진 라스베가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엔터테인먼트의 메카로 발전돼가고 있는 관광과 도박의 도시임을 잘 보여줬다.

죽기 전에 한번은 꼭 가야 된다는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도 찾았다. 깊이 1.6km, 폭 16km의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5000k㎡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에 깊은 계곡과 다채로운 빛깔의 바위, 장엄한 절경을 이루는 절벽과 빼어난 장관을 연출하는 협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나왔다.

그때였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손주들이 사라진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미아가 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혹시 몰라 우리 일행이 타고 온 검은색 2층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30분 가까이 헤매다 검은 버스를 발견했고 그제서야 안도했다. 손주들이 버스 앞에서 외국인들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내외는 울상이 돼 “하마터면 너희들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고 말했고 손주들은 “괜찮으세요?”라며 되레 우리를 안심시켜줬다. 미국 서부의 여름은 밝은 햇볕, 맑은 날씨의 연속이다. 온도 상으로 더운 날씨이지만 습도가 낮아 한국에서보다 더위를 덜 느끼게 한다. 사실상 우리 일행은 여행기간 요세미티와 라스베가스 호텔에서 각각 1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캠핑카에서 잠을 잤다. 음식을 아들이랑 딸이 도맡았고 대신 외손주들을 돌보는 건 우리 부부의 역할이었다. 외손주들의 일거일동을 지켜보는 것은 물론 사랑과 정도 듬뿍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중략)

어느덧 여행을 다녀온 지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손자는 동아방송예술대학에 입학했고 올해 군악대에 합격하면서 예술인으로서 군인으로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역시 미술 쪽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손녀는 예고를 나와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에 입학해 동양화를 전공했고 어느새 졸업을 앞두고 있다. 참 세월이 빠름을 알 수 있다. 다가오는 손녀의 졸업식에는 꼭 참석해 그간 못다한 할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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