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의 비밀
내리사랑의 비밀
  • 관리자
  • 승인 2009.06.20 10:41
  • 호수 17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우리말에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의미다. 그런 내리사랑의 이치를 잘 알기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 즉 효(孝)를 강조해 왔다. 어찌 우리 선조들은 이리도 지혜로운지, 생각하면 할수록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록 구체적인 표현은 다를지라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차이가 없다. 자기 자식을 기르면서 훗날 그 자식에게 받을 효(孝)의 대가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녀가 장성하고 나면 자녀에게 은근히 의지하게 되고, 물질적 봉양이나 심리적인 위안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하신 은사님 부부와 몇 명의 제자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은사님은 따님만 둘을 두셨는데, 작은 따님은 혼기가 지났지만 아직 미혼으로 있다. 대화 중에 아직 출가를 하지 않은 작은 따님이 화제에 오르면서 빨리 결혼을 해서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그 때 사모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나도 예전에는 아이들 키우며 고생스러울 때마다 이렇게 힘들게 키워 놓으면 나중에 커서 어미의 고생을 알아주고 보답하겠지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아이들한테 받아야 할 효도는 이미 그 애들을 기르면서 다 받았더라고. 어릴 때 보여준 재롱과 애교, 차츰 성장하면서 전해준 대견함과 뿌듯함, 그런 모든 것으로 이미 아이들을 기른 대가를 다 받은 거더라고.”

맞는 말이다. 물을 그대로 두면 아래로 흘러내리듯, 사랑도 그대로 두면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자식을 기르는 것은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아래로 흘러내리는 내리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받을 대가는 양육이 다 끝난 후에, 내리사랑이 다 끝난 후에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기르는 동안 그 속에서 맛본 모든 기쁨과 감동이 바로 그 양육의 수고와 사랑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즉 기르면서 이미 받을 효도를 다 받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효도, 즉 ‘치사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치사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는지도 모른다. 물을 위로 치솟게 하려면 펌프와 같은 인위적인 동력을 이용해 끌어 올려야 하듯이, 사랑도 위로 흐르게 하려면 ‘사친이효’(事親以孝)의 덕목을 애써 가르치고 반복해 훈련해야 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효를 강조해온 것은 그만큼 효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 부모가 내게 내리사랑을 베풀어 준 것처럼 나도 부모가 돼 내 자식에게 내리사랑을 베푼다. 그리고 내 자식 역시 그의 자식에게 내리사랑을 베풀 것이다. 사랑은 위로 갚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되갚아 나가는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내 부모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에게 갚고, 내 자녀 역시 내게서 받은 사랑을 내가 아닌 그의 자녀에게 갚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의 미덕이 사라졌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실천되던 효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효를 강제하던 사회의 관습과 제도가 사라짐으로써 자연스런 내리사랑의 순리대로 사랑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부모에 대한 부양의 책임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해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냥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치사랑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리사랑으로 흐르려는 사랑의 물살을 치사랑으로 바꾸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과 교육이 필요함을 명심해야 한다. 내 자식을 생각하듯이 내 부모를 생각한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주문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얼마든지 실천이 가능한 것이라면, 부모에 대한 사랑은 특별한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부모들 역시 그들 자신도 노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어린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았던 이 세상의 부모들 중 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자녀들에 대한 서운함을 조금은 더 덜 수 있을 않을까?

또 자녀들도 지금 그들이 그 자녀에게 베푸는 내리사랑을 훗날 그들의 자녀들 역시 그들의 자녀에게 내리 붓게 될 것임을 이해한다면,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 더해지지 않을까? 즉, 우리 모두 내리사랑의 비밀을 깨닫는다면, 이 시대 효의 실천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