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마스크 제국”
[백세시대 / 세상읽기] “마스크 제국”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2.06 11:13
  • 호수 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드디어 ‘마스크 공포’로부터 벗어났다. 

마스크 공포라고 표현 한 것은 지난 2년여 간 마스크 때문에 편치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엘리베이터를 타다가, 식당·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가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고선 허둥지둥 마스크를 찾아 황급히 얼굴에 뒤집어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인 중에 천부적(?)으로 마스크를 기피하는 이가 있다. 그는 정부의 마스크 실내 의무 착용 해제 소식을 듣자마자 “답답한 ‘헝겊쪼가리’로 얼굴을 덮지 않아도 되고, 첨보는 사람에게서 마스크 쓰라는 말 듣고 기분 상할 일도 없어졌고, 벌금을 무는 일도 생기지 않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행복한 건 맨얼굴의 자유”라고도 했다. 

그는 “70 평생 살면서 비누칠 외에 얼굴에 그 무엇도 발라본 적이 없다”며 “여름에 남들 다 바르는 선크림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심지어 편의점을 방문했을 때 점원이 “마스크를 써주세요”라고 지적하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등을 돌려 편의점을 나와 버리는 식이다.

그가 마스크를 더욱 기피하게 된 건 제 나름의 ‘마스크 무용론’ 때문이다. 성실하게 마스크를 썼던 주변사람들이 하나둘씩 코로나에 걸리는 것을 보면서 마스크가 방역의 기능을 못한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 여러 명이 일시에 코로나에 걸리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코로나 백신주사를 3차, 4차까지 맞았고,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침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스크를 착용했다. 개중에는 혼자 승용차를 타고 갈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는데도 감염됐다. 

지인은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비용과 고통을 감내하며 독감예방주사를 맞는 것인데 백신주사 맞고도 걸렸다면 그게 무슨 백신인가”라며 “국민혈세로 값비싼 백신을 대량 수입하면서 외국 제약회사 배만 불린 꼴이 됐다”고 정부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기자는 최근 마스크로 인해 치매환자(?) 취급을 받았다. 아내와 함께 명동을 들렀다가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에게 “방금 전까지 썼던 마스크가 없어졌네, 어딘가에 흘렸나봐, 어떡하지?”라고 하자 아내가 순발력 있게 “목도리로 입과 코를 감싸라”고 가르쳐주었다. 

기자가 “목도리로 대신해도 될까”라고 묻자 아내는 “맨얼굴로 버스를 타면 바로 ‘마스크 쓰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니까 아무 걸로나 얼굴만 가리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아내의 말대로 목도리로 코 위까지 가리고 버스를 탔다. 운전기사도 지적하지 않았고,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좌석에 앉은 뒤에도 옆의 승객 눈치를 보며 불안한 마음으로 흘러내리는 목도리를 연신 추켜올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해 걸어가던 중 상의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생전 처음 남대문시장에서 털모자를 구입해 써본다는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찍은 셀프사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한쪽 귀에 걸려있는 흰줄의 마스크 끈이 목도리 위로 살짝 보였다. 마스크를 턱 밑으로 끌어내리고 마스크를 찾은 것이었다. 

아내가 “치매환자 다 됐네”라고 핀잔을 줬다. 실소하던 기자는 아내의 지적에 반발하듯 “명동서부터 집까지 오는 동안 바로 옆에서 마스크 끈도 보지 못했나”라고 맞받아쳤다.

지난 2년여 간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기억에 남는 해프닝을 경험했을 것이다. 마스크 의무가 해제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공공장소는 물론 길에서도, 산에서도 마스크를 챙긴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쓰는 걸 답답해하거나 귀찮아하지 않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코로나가 감기처럼 일상화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스스로 마스크를 벗지 않을 것 같다. 가히 돌이킬 수 없는 ‘마스크 제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