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26]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곳은 어디? “영동·합천·구례… 산수 좋고, 살림 넉넉해 이사가는 이 없어”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26]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곳은 어디? “영동·합천·구례… 산수 좋고, 살림 넉넉해 이사가는 이 없어”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2.06 13:39
  • 호수 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뽑은 전남 구례의 구만촌. 구례의 남쪽에 있으며 지금의 하동 부근으로 추측된다. 강가에 바짝 접하여 뛰어난 경치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뱃길과 생선, 소금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가장 살 만한 곳이라고 기록해놓았다. 사진은 하동포구공원의 기념물. 사진=한국관광공사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뽑은 전남 구례의 구만촌. 구례의 남쪽에 있으며 지금의 하동 부근으로 추측된다. 강가에 바짝 접하여 뛰어난 경치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뱃길과 생선, 소금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가장 살 만한 곳이라고 기록해놓았다. 사진은 하동포구공원의 기념물. 사진=한국관광공사

이중환의 인문지리지 ‘택리지’에 나타난 전국의 명소 

‘택리지’ 본 뒤 백성들 이주 현상 많아 폐단 생기기도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경남 합천, 전남 구례, 전북 전주, 대전 유성, 경북 하회, 평양 주변, 재령평야.”

이중환의 ‘택리지’표지.
이중환의 ‘택리지’표지.

조선의 한 선비가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명소를 책으로 남겼다. 조선 영조시대에 남인 당파를 주도하던 명문가 출신의 이중환(1690∼1756년)은 38세 되던 해 이인좌의 난에 휘말려 삭탈관직 당하고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는 ‘이제부터 어딜 가야 굶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전국 유람의 길을 떠났다. 그로부터 20여년 후인 61세에 펴낸 책이 ‘택리지’(擇里志)이다. ‘택리’는 마을을 택한다는 뜻이다. 원래의 책 제목은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로 사대부가 살만한 장소라는 의미다. 위의 나열한 지역은 택리지에 기록된 사대부가 거처하기 좋은 지역이다. 

경남 합천에 대해선 후한 평을 했다. 

“감천 남쪽에는 선석산이 있고, 선석산 남쪽에는 성주와 고령이 있는데, 고령은 옛 가야국 지역이다. 또 고령 남쪽에는 합천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가야산 동쪽에 있다. 세 고을의 논은 영남에서 가장 비옥해서 파종을 적게 해도 곡식을 많이 수확한다. 그러므로 대대로 이 땅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살림이 넉넉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가 없다.”

구례는 가장 살만한 곳으로 지적했다.

“남원 동남쪽에 있는 마을은 성원(현 구례군 산동면 일대)으로 최씨들이 대대로 사는 곳이고, 산수의 경치가 상당히 아름답다. 남쪽에는 구례현이 있다. 성원에서 구례까지 하나의 들판이 펼쳐져 있고, 1묘에 1종을 수확하는 비옥한 논이 많다. 구례 서쪽에는 산수가 기이한 봉동이 있고, 동쪽에는 화엄사와 연곡사 등의 명승지가 있으며, 남쪽에는 구만촌(구례군 광의면 구만리 일대)이 있다. 임실에서 구례까지 강가를 따라 이름난 마을, 경치가 뛰어난 곳, 큰 촌락이 많다. 하지만 오로지 구만촌(지금의 하동)만이 강가에 바짝 접하여 뛰어난 경치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뱃길과 생선, 소금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가장 살 만한 곳이다.”

이중환은 충청도에선 영동을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았다. 

“영동은 속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다. 동쪽에는 추풍령이 있는데 덕유산에서 뻗어 나온 맥이 지나가다가 정기를 멈춘 곳이다. 비록 고개라 부르지만 실상은 평지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비록 산이 많다고 하나 심하게 거칠거나 웅장하지 않으며 또 몹시 낮거나 평평하지도 않다. 바위와 봉우리가 윤택하고 맑은 기운을 띠었으며 시내와 산골 물은 맑고 깨끗하여 사랑할 만하며 조잡하거나 놀랄만한 형상도 없다. 땅이 기름진데다 물이 많으므로 물대기가 쉬워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적다.”

강원도는 산수가 뛰어난 지역으로 평했다. 

“경치가 빼어난 산수는 당연히 강원도 영동 지역을 첫째로 꼽아야 한다. 고성 삼일포, 강릉 경포대, 흡곡(강원도 통천지역 옛 지명) 시중대가 최고의 산수이다. 이에 버금가는 산수로 간성의 화담(고성 화진포), 속초 영랑호, 양양 청초호가 있다. 원주 북쪽에는 횡성현 읍치가 있는데 형용하기 어려운 맑은 기운이 있어 고을 안에는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들이 많다, (춘천은)청평산에서 남쪽으로 10여리에 소양강과 맞닿은 땅이 있으니 바로 예맥의 ‘천년의 고도’이다.”

이 같은 판별의 기준은 무언가. 택리지는 크게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 ‘총론’ 등 4개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이중 책 절반을 차지하는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주거 선정 기준으로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 등 네 가지를 들었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부적당해도 살 곳이 못 된다고 했다. 

택리지에는 원산·강경·광천·목포 같은 포구, 한강·낙동강에 인접한 교통 요지에 주목하면서 이곳들을 명촌(名村)이라고 적었다. 경상도나 평안도를 빼고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인심을 기술하지 않았다.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며,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고, 함경도는 오랑캐 땅과 가까운 탓에 백성의 성질이 모두 거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사납고 모질며, 강원도는 많이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직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데에 쉽게 움직이며, 경기도는 도성만 벗어나면 재물이 보잘 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재만 좇는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적 뿌리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백두산을 중국의 곤륜산(崑崙山)에서 뻗는 산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등 전국 팔도의 위치와 역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경상도는 변한·진한의 땅이고 함경·평안·황해도는 고조선·고구려, 강원도는 예맥(濊貊)의 땅임을 밝혔다. 고조선과 삼한, 고구려와 백제·신라의 건국, 고려의 건국과 그 경역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논했다. 

평안도는 청천강을 경계로 청북(淸北)과 청남(淸南)으로 구분하고, 황해도는 멸악산맥을 경계로 이북과 이남으로 구분했다. 충청도는 차령(車嶺)을 경계로 남북을 나누고 차령 이북은 경기에 가깝고, 남쪽은 전라지방에 가깝다고 서술했다.

‘택리지’는 조선 후기에 백성들 사이에 널리 읽힌 책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이주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로 인한 폐단도 컸다는 기록도 있다. 270여년 전의 살기 좋은 지역과 오늘날 살기 좋은 도시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노년에 유유자적하게 살 만한 장소를 고를 때 이중환의 발로 쓴 전국 유람기는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