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⑨
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⑨
  • 관리자
  • 승인 2009.06.20 10:47
  • 호수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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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 창립 40주년] 한국 최초의 노인교육기관, 노인대학의 탄생
196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유네스코총회에서 성인교육학계의 원로인 랑그랑 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노인들도 교육을 받아야 여생을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다”고 강조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 노인복지 차원에서 노인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노인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한 사람은 김제태(金濟泰) 목사다. 그는 랑그랑의 교육이념에 공감해 1972년, MBC 탤런트 박규채를 비롯해 장면 정권 때 충남에서 도의원을 지낸 맹은재 등과 더불어 ‘서울평생교육원’이란 명칭의 노인대학을 설립했다. 당시 소공동에 있던 여성회관 강당에서 주간 1회 2시간씩 노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달 뒤에는 명동 YMCA 건너편 골목에 있는 ‘덕명의숙’(德明義熟)에서도 김제태 목사의 프로그램과 거의 동일한 성격의 노인대상 강좌를 개설했다. 다음해인 1973년에는 서울간호전문대학의 하두철(河斗徹) 박사가 서울 서대문고 문화촌에 ‘인황노인대학’이란 노인대상 강좌를 개설함과 동시에 사단법인체로 ‘한국성인교육회’를 설립, 전국 주요도시에도 이러한 노인대학을 계속 개설해 나갔다. 필자가 대한노인회의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던 1975년경에는 전국적으로 하두철 박사가 이끄는 한국성인교육회 산하의 노인대학이 50개소가 넘었고, 학생 수도 7000명에 육박했다.

필자가 사무국장으로 취임한 당시만 하더라도 대한노인회 산하조직은 경로당뿐이었고, 그곳에는 여가프로그램도 별반 없었기 때문에 노인회의 말단회원들 중에는 하두철 박사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으로 흡수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노인회도 노인 대상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1975년 5월 ‘노인교육프로그램 운영요강’이란 계획서를 작성해 전국 각 시도 및 시군구지회에 시달했다.

운영요강의 요약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군구지회에는 반드시 부설 노인대학을 설치한다. △노인대학의 학장은 학식과 덕망 등에 있어 해당지역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60세 이상의 교육자 출신자로 한다. △수업은 1주간에 1회, 회당 2시간씩 한다. △연간 최소 80시간(40회) 이상 수업을 하도록 한다. △강의내용은 가정생활과 노인의 역할 노인과 재산관리 노인과 자원봉사활동 노인과 바람직한 여가프로그램 노인과 건강관리 등은 필수과목으로 선정하고, 나머지는 해당지회가 자의적으로 선정할 수 있다. 단, 강의시간에 특정종교 또는 특정정당을 선전하는 행위는 하지 못한다. 학생들로부터 수강에 소요되는 실비를 징수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중앙회로부터 운영요강을 시달 받은 지회 중 30% 내외는 같은 해 9월 신학기부터, 그리고 나머지는 1976년 봄부터 노인대학을 개설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노인교육은 하두철 박사가 주도하는 한국성인교육회 산하의 노인대학과 더불어 지역마다 노인대학이 두 곳씩 운영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노인들이 노인대학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짐에 따라 1970년대 후반부터는 종교계에서도 노인교육프로그램 운영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에서는 박고빈 신부와 맹마리아 수녀 등 두 분이 앞장서 성당마다 노인대학을 설치하는 운동을 일으켜 1978년경에는 서울대교구 산하에만 100여개소의 노인대학을 설립함과 동시에 가톨릭 노인대학연합회를 결성하고, 통일된 교재 개발, 강사진의 파견 등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기도 했다.

개신교와 불교계에서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노인대학운동에 참가하게 됨으로써 1980년대 후반 경에는 전국적으로 1150여개소의 노인대학이 생겨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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