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⑩
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⑩
  • 관리자
  • 승인 2009.06.26 13:50
  • 호수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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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 창립 40주년] 경로당 증설을 위한 노인회의 노력
현재 우리나라에는 노인 여가활용 장소로 경로당이 전국적으로 5만 개소 이상 설치돼 있어 세계적으로도 경로당이 가장 많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경로당이 어떻게 이와 같이 많이 설치됐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194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경로당이 있는 촌락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촌락마다 사랑방을 개방해 놓은 집이 한두 곳은 반드시 있었으므로 노인들은 그런 곳에 모여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정보도 교환하고 장기를 두기도 했기 때문에 경로당을 개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가 1974년도에 발간한 자료인 ‘경로당의 현황과 과제’라는 문헌에 의하면 19세기말 또는 20세기 초에도 우리나라에는 경로당과 비슷한 성격의 시설이 더러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경로당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이 종결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 그리고 계속되는 궁핍으로 인해서 사랑방은 점진적으로 그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경로당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가건물 형태의 경로당이 이곳저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때에 건립된 경로당 중 많은 비율은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정치인들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사랑방이 감소함에 따라 도시지역 노인들 중에는 가로수 밑 그늘진 곳, 또는 복덕방 주변에 모여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거나 장기바둑 등으로 소일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경로당과 같은 노인전용 여가활용장소를 필요로 했다.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은 경로당을 지어주는 것이 노인표를 얻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알게 됐고, 선거 때만 되면 너도나도 공터만 있으면 그곳에 무허가 가건축의 경로당을 지어주면서 노인들의 환심을 샀다. 그래서 195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20년간 서울과 부산 등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도시지역에는 무허가 가건물 형태의 경로당이 난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노인회가 1976년에 실시한 경로당 실태조사 자료에 의하면 서울, 부산, 대구지역 경로당의 경우 57%가 무허가 가건물로 밝혀지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가건물 형태로 건립된 경로당은 모두 철거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로당을 철거 당한 노인들은 모두 대한노인회 중앙회에 몰려와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다. 대한노인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건복지부와도 상의해 보기도 했으나 그들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박관수 회장과 필자가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공화당의 이효상(李孝祥) 의장을 찾아갔다. 이효상 의장은 박관수 옹의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가 당부하는 사항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박준규 의원은 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이었는데 그도 동석했다. 두 분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경로당 신축을 국고나 지방비에서 지원하는 길을 터 주었다.

그 후 새로 짓는 경로당은 모두 정부예산에 의존했으나 그 수는 노인들의 여가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매우 부족했다.

1977년 초 어느 날, 필자는 대한주택공사 양택식 사장을 찾아갔다. 그는 서울시장에서 물러나고 얼마 뒤 주택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에게 앞으로 주택공사가 아파트를 지을 때 경로당도 하나씩 짓도록 배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택공사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전국 각지에 많은 아파트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중앙회관 신축과 관련, 여러 번 접촉했던 관계로 피차 잘 알고 있는 처지였다.

그는 즉석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경로당 증설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 하나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주택개발촉진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법에 아파트를 신축할 때 반드시 부설로 일정 규모 이상의 경로당을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는 규정을 삽입하기만 하면 예산 확보를 위한 로비활동을 하지 않고도 경로당은 자동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대한노인회 회장단은 수차에 걸쳐 건설부에 가서 실무자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끈질긴 교섭 끝에 그러한 규정을 삽입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만여개소의 경로당이 있지만 그중 과반수는 아파트 내에 있다. 이는 당시 대한노인회가 이룩한 성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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