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 문화거리 만들 지자체 어디 없소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 문화거리 만들 지자체 어디 없소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3.02.27 11:18
  • 호수 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핵심 콘텐츠는 고령친화 상점과

창의적 여가·문화예술 프로그램

노인 문화거리 잘 조성하면

문화 한국의 자랑거리가 되고

부진한 지역 상권 부활시킬 것

2025년 대한민국은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로 들어간다. 연평균 50만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층에 편입되어 이제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 된다. 기초연금과 건강보험을 포함하여 노인을 위한 국가재정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정년연장과 건강증진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구고령화가 지구촌 전체의 공통 과제라는 인식하에 2007년 세계 노인의 날에 고령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의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lobal Network of Age-friendly Cities)’를 출범시켰다. 우리나라는 2013년 서울시를 필두로 하여 현재 전국 30여 개의 기초 및 광역 지자체가 가입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WHO가 제시한 가이드에 따라 안전, 교통, 주택, 사회참여, 사회통합, 고용, 커뮤니케이션, 건강 서비스 등 8개 영역에서 ‘활기찬 노년(active aging)’이라는 목표를 향해 조례를 만들고 시행계획을 수립하였지만 현재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미지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에 대한 존중이다. 대중매체에서 노인을 긍정적이고 편견 없는 이미지로 묘사하고, 노인차별 금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없이는 어떤 계획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활동적이고 존중받는 노인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자는 ‘노인 문화거리’ 조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노인 문화거리는 고령친화도시 요건이 잘 갖추어져 노인들이 여가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이 압축적으로 마련된 장소다. 노인들은 이 거리의 단골손님이 되면서 자아실현과 사회참여의 기회를 얻는다. 노인 문화거리의 사회경제적 편익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활기찬 노년에 기여한다. 서울시가 노인특화거리로 지정한 종로 탑골공원 뒤 락희거리에 가보면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누추하다. 노인 문화거리의 핵심 콘텐츠는 고령친화 상점과 창의적 여가·문화예술·복지 프로그램이다. 바람직한 노인 일자리 모델이 개발될 수도 있다. 

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시너지 효과를 내어 생산적인 ‘신노년문화’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노년의 긍정적인 요소를 발굴‧육성하여 초고령사회를 불안이 아니라 희망으로 맞이하는 관문이 된다. 나아가 노인이 젊은이의 짐이 아니라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선배 시민임을 보여주는 테스트베드(어떤 것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시험적으로 적용해 보는 소규모 영역)가 될 것이다. 

둘째, 문화 한국의 자랑거리가 된다. 내가 가본 해외 유명거리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을 향해 뻗은 빅토리아 스트릿이다.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 자체가 볼거리인데다 다양한 쇼핑, 놀거리, 먹거리, 박물관, 공연장이 남녀노소 수많은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1830년대 초부터 설계도에 의해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는데 건물 하나하나에 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전통과 현대가 신비롭게 어우러져 있는 거리, 거기에 장엄하게 서 있는 영국이 자랑하는 인물들의 동상은 대영제국의 종주국이었던 영국의 위상을 느끼게 한다. 

노인 문화거리가 노인을 주 고객층으로 하지만 모든 세대,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재미와 품격이 있는 명품거리로 조성된다면 노인을 섬기는 문화한국의 자랑거리가 하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셋째, 부진한 로컬 상권을 부활시킨다. 이 문화거리의 입지로는, 대중교통 접근성은 좋은데 침체되어 있고, 주변 상권과 연계하여 도시재생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면 좋을 것이다. 찾아오는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나타날 노인들의 소비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하루에 1〜2만 원을 쓴다 해도 소비자 수가 많으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될 것이다. 

이 거리의 상점들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묶어 공동으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존사업자 지원과 신규사업자 유치 등 상권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여가생활은 건강과 경제 못지않게 노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여가생활이 창의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노인 자신이 행복하고 주위의 존중을 받는다. 전국에 로데오 거리, 젊음의 거리, 문화의 거리가 많지만 노인들이 갈만한 곳은 마땅치 않다. 연간 1000만 명이 방문한다는 동경의 전통적이며 이국적인 ‘스가모 거리’를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MZ 세대도 즐겨 찾는 도심 전통시장의 부활 전략을 참고할 수도 있다. ‘노인 문화거리’라는 이름이 좀 촌스럽다면 ‘스페로(Hope의 라틴어) 거리’는 어떨까?

노인 문화거리는 허황된 꿈이라고 폄하하지 않기를 바란다. 해외 유명 관광지엔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곳이 많다. 세계 최대의 놀이공원인 미국의 디즈니월드도 꿈을 재현시킨 곳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꿈을 꾸지 않고는 발전하지 못한다. 

관심있는 기초 및 광역 지자체가 의기투합하여 상상력을 발휘하고, 비전을 공유한 중앙정부는 초고령사회 대비 차원에서 지원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한국노년학회와 같은 노년학 전문 학술단체와 함께 밑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