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무급 자원봉사자 이탈 가속화
노인 무급 자원봉사자 이탈 가속화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6.29 10:51
  • 호수 1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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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일자리사업과 상당수 겹쳐…“이왕이면 용동 벌며 봉사”
노인일자리사업이 노인자원봉사를 집어삼키고 있다.

최근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후생활과 건전한 사회참여를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노인자원봉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노인일자리사업이 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순수한 자원봉사의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2004년 노인일자리사업이 구상될 당시에도 예견됐던 것으로, 순수한 의미의 노인자원봉사가 꽃도 피워보기 전에 고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할 능력을 갖춘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 노후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사상 처음으로 292억원의 예산을 들여 2만5000개의 노인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후 예산이 크게 확대되면서 노인일자리사업 참가자도 크게 늘어 2007년엔 11만명, 2008년 11만7000명에 이어 올해는 19만6000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노인일자리 참가자는 크게 증가한데 반해 순수한 노인자원봉사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5.3%만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에 비해 오히려 0.1% 감소했다.

노인인력이 일자리사업에 편중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생활비라도 충당할 수 있는 일자리사업을 선호하는 탓도 있지만, 일자리사업 내용이 자원봉사의 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이를 테면, 한자교육, 신문활용(NIE) 교육, 숲생태해설사, 노(老)-노(老)케어, 노인학대예방, 주거환경개선, 문화체험 등 교육형과 복지형 노인일자리 상당수가 자원봉사 프로그램과 중첩되고 있다. 즉, 이전에는 순수한 자원봉사로 행해졌던 일들이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월 20만원 안팎을 지급 받는 ‘일거리’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순수 자원봉사에 매진하던 어르신들이 노인일자리사업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한 자원봉사단체 실무자는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해오던 어르신들이 20만원 상당의 보수가 지급되는 노인일자리사업을 선호하면서 이탈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노인자원봉사 본연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산노인종합복지관 박준기 부장은 “복지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어르신들의 대다수가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노인일자리사업이 등장할 당시 순수자원봉사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순수하게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어르신들보다는 자원봉사와 일자리사업을 병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어르신들 가운데 일자리사업 참여 자체를 자원봉사 참여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동작노인종합복지관 박광수 부장은 “노인일자리사업에 상관없이 무료봉사를 고집하는 어르신들도 있다”며 “그러나 노인일자리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노인자원봉사자도 교통비 등 실비를 지급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나타나는 등 과거와 견해차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순수 노인자원봉사자가 고갈될 위기에 처하면서 일정 정도 실비를 지급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처우는 주관 단체나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이지만 실제 노인자원봉사자에게 하루 8000원 상당의 실비를 지급하는 자원봉사센터도 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경우 서울시 지침에 따라 경우에 따라 4시간 이상 봉사자 가운데 하루 교통비 3000원, 식대 5000원 등 8000원 안팎의 실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자원봉사의 ‘무보수 원칙’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지급하지 않는다.

김현숙 서초구자원봉사센터 소장은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포상 및 표창, 실비보상 등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며 “이는 자원봉사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활동의 지속성을 가져다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정과 격려의 의미를 넘어 실비보상의 액수가 높아지고 ‘일한 대가’ ‘사회적 특혜’로 인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계는 노인자원봉사자에 대한 미흡한 사회적 보상체계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동기부여를 위한 실비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권중돈 목원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무보수는 자원봉사의 기본원칙이지만 노인자원봉사자의 경우 경제적 능력이 제한돼 있어 교통비나 식비 등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교통비나 재료비 등 실비를 지원하되 현금지급 시 다른 용도로 유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쿠폰이나 카드 형태로 지급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노인자원봉사자 관리체계가 분야마다 다르고, 자원봉사 전달체계에서 상호교류와 협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노인자원봉사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담조직 설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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