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라벤더이거나 쑥이거나!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라벤더이거나 쑥이거나!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3.04.03 10:04
  • 호수 8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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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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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가 원산인 라벤더는

잘만 키우면 관목으로 크게 자라

겨울을 잘 견디라고 응원

그런데 화단 여기저기 쑥이 차지

뽑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은 인정

라벤더라는 식물은 잘만 키우면 관목이 되는 덩치있는 식물이다. 자생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이곳에서는 라벤더를 잘 깎아 생울타리로 만들기도 한다. 이 라벤더 생울타리에 빨래를 널어 말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잎의 향기가 옷에 묻어나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도 잘만 키우면 관목으로 우람하게 커진다. 하지만 이건 아래 남쪽 지방에서만 가능하고, 겨울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영하의 겨울 추위가 있는 곳에서는 다년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 살고있는 속초는 겨울이 다소 온화해 이 라벤더의 월동이 오락가락한다. 어떤 해에는 월동을 하고, 추위가 강해지면 전부 죽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월동과는 상관없이 향기로운 라벤더를 즐기려고 화단 곳곳에 다섯 판이 넘게 심었다. 

사실, 겨울을 나고 못 나고는 라벤더에게 맡길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나 좋을 대로 편하게 생각해버렸다. 다행히 작년 겨울 눈이 많이 내려 포근했던 탓에 화단을 살펴보니 반절 정도의 라벤더가 살아남은 것으로 보였다. 이미 살아남은 라벤더 잎에는 보드러운 물기가 차 오르고 있는 중이다.

정원을 보는 즐거움 중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모진 겨울을 나고 잎을 틔우는 라벤더를 보자니 너무 기특하고, 나 역시도 ‘겨울을 같이 잘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손이라도 뻗어 악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옆에 ‘어라?’ 라벤더와 살짝 비슷한 은회색 잎을 틔운 지독하게 미운 ‘쑥’이 보였다. 얼마 전 통영에서 먹었던 ‘도다리쑥국’이 떠오르면서 쑥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 분했다.

그제야 이리저리 화단을 살펴보니 벌써 쑥이 여기저기 많이도 진을 치고 있었다. 에고, 가끔 내가 키우는 식물들에게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아니 어쩌자고 그렇게 정성을 다 해줘도 비실거리고 굴러들어온 쑥에게도 지고, 민들레에게도 지고, 내 맘을 그리도 몰라주는지. 

본 김에 과감하게 화단 곳곳에 숨어든 쑥을 기어이 뽑아냈다. 손안에 쥐고 보니 수북해서 내친김에 멸치 국물 우려내 호박과 감자를 넣어 쑥국을 끓였다. 사실 살겠다고 나온 쑥을 모질 게 뽑을 땐 일말의 죄책감이 슬며시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동안 경험상 쑥은 절대 나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뜯어낸 그 자리에서, 내가 아끼는 라벤더보다 더 열심히 자라서 기어이 올여름 내내 나의 부아가 치밀게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정원은 인간이 만든, 인간에 의한 매우 이기적인 공간이다. 식물들의 자생지를 떠나오게 하고, 자연 상태에서라면 서로 만날 수도 없는 북반구, 남반구의 식물을 섞어서 심고,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만 골라 화단을 가득 채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가 키우는 식물들을 ‘반려식물’이라고 호칭하는 걸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이 용어를 절대 쓰지 않는다. 아니 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아무리 내가 심었다 할지라도 결코 식물은 우리의 반려가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식물의 강력한 힘은 저항이 아니라 순응하며 진화하는 데 있다. 식물들은 우리가 심어준 자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기에서 살아갈 방법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고 우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정말 강하고 집요하게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만 애절하게 반려라고 우겨볼 뿐, 식물 입장에서는 우리와 함께 할 맘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만만했던 정원은 화초, 잡초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 공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결국 우리의 이기심이 가득한 정원이지만 그래서 반려가 될 수 없는 곳이지만, 정원은 내 삶과 묵묵히 함께 동행하는 내 맘대로 안되는 하나의 작지만 커다란 우주이기도 하다. 

올해도 나는 이 마음대로 안되는 정원이라는 우주에서 라벤더에게 잘 살아보라고 독려도 하고, 쑥에게 너는 왜 이렇게 사냐고 원망도 하고, 꽃피면 찾아오는 벌들에게 그 꿀은 어디에 모아두고 사냐고 묻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볼 참이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위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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