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열일곱 예찬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열일곱 예찬 / 신은경
  •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 승인 2023.04.10 10:38
  • 호수 8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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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인생의 열일곱은 미래를 꿈꾸며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같은 날

창간 17주년 맞은 백세시대는 지금껏 용감히 걸어온 것처럼

노년독자에 친절한 손 되어주길

온 세상이 꽃 잔치다. 예년 이맘때보다 따뜻한 날씨에 저마다 만개한 꽃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생을 사계절로 보면, 봄은 마른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연초록 싹 같고,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같다. 인생의 계절인 가을 문턱에 들어선 내게 일찍 터진 꽃망울은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몇 년 전,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책임자로 가 있을 때였다. 직원들과 부서별로 점심을 같이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말이 친목이지, 새로 온 이사장과 얼굴을 익히고 서로를 알자는 자리였다. 

물론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도 있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목적이 있는 자리이니 한 말씀 할 필요도 있겠지만, 입장바꿔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자리일까 싶었다. 이사장으로부터 멀리 앉은 직원은 그날 행운이다. 

그래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쭉 돌아가며 한 마디씩 말하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또 다른 형태의 고문일 수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재미있는 공통의 질문을 던졌다.

“열일곱 살 때 뭐하고 놀았어요?” 처음엔 ‘글쎄요....’ 하고 눈을 깜빡이던 직원들이 점차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행히 청소년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의 구성원들이어서 대부분 밝고, 활발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근데 왜 하필 열일곱 살이예요?”, “그냥 떠오른 나이인데, 아름답잖아요? 열일곱.” 한창 사춘기이고,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 알 수 없는 미래가 앞에 놓여져 있는 나이. 알 수 없는 미래이기에 틀에 갇히지 않았고, 사람을 줄 세우는 대학도 아직 정해지지 않아 공평했다.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였다. 

유명 연예인의 팬클럽에 들어가 온 에너지와 돈을 쏟아부었던 친구는 역시 활발한 청소년 지도자가 되어 있었고, 작가가 되겠다며 책을 읽고 끊임없이 끄적이던 17세를 보냈다는 친구는 그동안 쓴 글들을 묶어 책을 내기도 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친구는 여행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만들었다고 보여주기도 했다.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넘쳐났다.

나의 17세, 열 일곱.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혼란과 불안, 큰 꿈과 비전, 자존심과 열등감이 뒤섞여 있었다. 내향인인 나는 생각만 가득한 채 끊임없이 쓰는 인간이었다.

그때 참 이뻤다. 새로 입게 된 진명학교 교복은 빳빳한 흰 칼라가 포인트라 정성껏 풀을 먹여 입고 다녔고, 만원 버스를 타면 남학생들 틈에서 여름 흰 운동화가 짓밟힐까봐 광화문부터 효자동 학교까진 걸어서 다녔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아무 모양을 내지 않아도 빛났던 그때 그 얼굴이 그립다. 

공부는 잘하고만 싶었지, 결코 잘 되지 않았다. 잘 될 수가 없었다. 백일장이니, 예절행사 연습이니 해서, 온갖 학교 행사마다 참가하느라 수업시간이면 누가 나를 불러내 주지 않을까 하여 교실문만 쳐다보고 살았으니 말이다.  

생각난 김에 동창들에게도 물었다. ‘17살때 뭐하고 놀았어?’ 성악 레슨 받으며 보냈다는 친구는 결국 음대를 갔고, 학원과 학교만 오가며 좋은 대학가기를 열망했던 모범생은 소망대로 명문대를 다녔다. 

인생 가을의 문턱에 서서 돌아보는 봄은 찬란하고 달콤하다. 우리의 열일곱 음악시간엔 ‘4월의 노래’를 불렀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때 배워 부른 4월의 노래는 해마다 돌아오는 4월이 아니라 청춘의 노래, 열일곱의 노래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봄의 노래였다.

백세시대가 창간 17주년을 맞았다. 백세시대가 지나온 열일곱 해는 용맹스러웠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자는 용기 있는 자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어서 ‘이게 맞는 길이냐’고 날마다 스스로에게 묻지만 그래서 더 의미있고 독보적인 길이었다.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보람찼고, 앞길이 보이지 않아 더 불을 밝혀야 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스스로 길을 내어 헤쳐 나와야 했다. 그래도 돌아보니 평탄한 대로도, 자갈밭도, 꼬불꼬불한 오솔길도 모두 다정한 길이었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맞은 독자들에게 열일곱 봄을 맞은 백세시대 신문이 앞으로도 계속 따뜻하고 친절한 손을 내밀어 주길 기대한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도 빛나는 시간이란 것을 많이 깨우쳐 주고 위로해 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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