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유통기한’에 퇴직해도 ‘소비기한’까지 일하고 싶다!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유통기한’에 퇴직해도 ‘소비기한’까지 일하고 싶다!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23.04.24 10:28
  • 호수 8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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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식품도 소비기한까지는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정년이 돼 퇴직하더라도

일할 능력과 건강이 있는 한

제값 받고 일할 수 있게 해야

“유통기한이 지났잖아!” 올해 61세인 매우 유능하고 유명한 방송인의 말이다. 내가 보기에 여전히 유쾌하고 유능하며 유망한 그는 평사원에서 상무까지 승진하며 방송사 직원들의 모델이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퇴직한지 4개월째인 지금, 어쩌면 가장 글온도가 높을 시점에 사위가 운영하는 비뇨기과에서 상담실장을 하고 있다. 사위병원 입사 동기는 ‘유통기한 초과’였다.

유통기한이란 제품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되고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말한다. 

1985년 유통기한 표시제가 시작돼 2023년 1월 1일부터 소비기한이 추가 기재되면서 소비자들은 보다 안전하게 식품 섭취가 가능해졌다. 

소비기한이란 표시된 보관조건 준수 시 안전하게 식품 섭취가 가능한 기한을 말한다. 곧 소비기한까지는 안심하고 구입한 식품을 먹어도 된다는 말이다. 외국에서는 더이상 유통기한을 사용하지 않고 소비기한만 사용하는 곳이 많다. 소비기한까지는 값도 동일하다. 

이 지점에서 식품의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을 가만히 살펴보면 유통기한은 영업자를 중심으로한 표시제이고, 소비기한은 소비자 중심의 표시제도라 할 수 있다. 유통은 회사가 하고 소비는 우리가 하는 것이니 말이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식품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력도 그러지 않나 싶다. 

우리의 정년은 유통기한으로,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소비기한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입사하고 승진하고 정년에 박수받으며 퇴직하지만, 여전히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하는 우리이다. 

60세나 65세에 정년퇴임을 하지만 요즘 그 나이는 기량과 능력 그리고 건강까지 여전히 좋은 나이이다. 그러니 행정적으로 퇴직하거나 은퇴할 수 있으나 퇴직 후에도 나의 유능함을 유지하고 싶기에 일하고 싶고, 막막한 생계를 생각하면 더 간절히 일해야 한다. 

소비기한을 우리의 일자리와 연결해보자면, 우리의 능력과 노동력은 몇 살까지가 소비기한일까? 정해진 퇴직연령의 유통기한은 분명한데, 우리의 소비기한인 노동가능 연령은 정해진 바가 없다. 

나이가 근로의 방해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연령차별주의’ 논란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근로현장에서는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다. 퇴직과 동시에 능력이 있어도 반값 신세이거나 반의 반값에 근로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이 상황이 심지어 억울할 때도 있다. 

이제 건강과 유능성, 의지와 열정까지 갖춘 고숙련자들에게 유통기한을 넘어 소비기한 역시 필요한 시점이 됐다. 유통기한이 사라지고 소비기한이 자리 잡는 소비시장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젊고 왕성하며 유능한 노년세대들에게 소비기한까지는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소비기한까지 식품은 제값을 받는데, 왜 근로 시장에서는 여전히 유능한 퇴직자들에게 나이를 이유로 저임금 지급을 당연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능력은 그대로 사용하고, 보상은 달리하다니! 물론 퇴직자들의 이런 요구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공감과 불편이 공존하겠지만, 일단 말이라도 좀 해봅시다.   

뉴스에 보면 검사나 변호사들, 고위직 공무원들은 퇴직 후에도 기업이나 연관기관으로 잘만 가더만, 막상 평범한 이들은 퇴직 후에 대부분 비슷한 처지라 집안은 권태롭고 집 밖은 황량하다. 

정년을 굳이 못박아야 하는 이유도 알겠고, 다음 세대를 위한 공정과 공존의 실천이라는 것도 알겠다. 또 퇴직 이후에도 신분을 달리하여 여전히 퇴직한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저 감사하다고 하지만, 정작 이득은 고용주인 회사만 이득일 뿐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퇴직자를 저렴하게 고용하니 저비용 고효율이나, 퇴직자는 같은 일을 하고 더 적은 돈을 받아야 하고, 정작 뽑아야 하는 신입사원은 뽑힐 자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유통기한보다는 차라리 소비기한을 두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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