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 전, 화폭에 담긴 20세기 대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 전, 화폭에 담긴 20세기 대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5.02 14:05
  • 호수 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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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서는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그림은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미 대표화가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 회화·드로잉 등 270여점 선봬

오바마 시절 백악관에 걸어둔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1940년대 어느날 밤 미국 뉴욕의 한 식당. 형광등 아래 한 남녀가 요리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는 중절모를 쓴 남자의 뒷모습과 빈 의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도시의 적막한 풍경과 쓸쓸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모습을 담은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은 미국의 20세기 회화를 대표하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8월 20일까지 진행되는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 전에서는 초기부터 말년까지 전 생애에 걸친 회화·드로잉·판화·수채화 160여점과 아카이브 등 모두 270여점을 선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함께 개최한 전시로 개막 전부터 예매표가 13만장이 팔리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호퍼의 삶을 소개하는 ‘에드워드 호퍼’를 시작으로, 그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호퍼의 아내이자 동료로 큰 영향을 미친 ‘조세핀 호퍼’와 ‘호퍼의 삶과 업’ 등 총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먼저 ‘에드워드 호퍼’에서는 ‘자화상’(1925~1930)을 비롯해 그의 삶을 다룬 드로잉 등을 소개한다. 호퍼는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움·소외감·공허함 등 내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도시인의 평범한 일상과 정서를 빛의 대비, 독특한 공간 구성과 표현 등으로 담아내며 사랑받고 있다. 특히 20세기 초중반 급성장하던 미국 뉴욕과 곳곳의 도시지역, 미국인들의 삶을 가장 미국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연극적 화면 구성은 후대에 영향을 끼쳐 영화나 광고 영상,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차용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삽화를 그렸던 그는 전업작가의 꿈을 키웠고 3번에 걸쳐(1906~1910) ‘예술의 수도’라 불리는 파리를 여행했다. 

호퍼는 이곳에서 당시 전위적 야수파나 큐비즘보다 빛의 효과를 강조한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고, ‘비스트로 또는 와인가게’(1909), ‘푸른 저녁’(1914) 등을 그렸다. 이중 ‘푸른 저녁’은 하얀 분장을 한 피에로를 중심에 두고 짙은 화장의 매춘부, 고위직 군복 차림의 군인, 턱시도를 입은 귀족이 그를 둘러싼 카페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어떤 교감도 없는 모습을 통해 외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뉴욕’ 섹션에서는 빛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 초기의 에칭(동판을 긁어 산의 부식작용으로 이미지를 나타내는 방식) 작업부터 1920~1930년대 주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중 눈여겨 볼 작품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담은 ‘밤의 창문’(1928)과 ‘황혼의 집’(1935)이다. 호퍼의 작품에는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적 시선이 많은데 창문이 핵심 요소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내·외부의 분리를 상징한다. 창문은 도시화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창문 너머의 이웃집 공간이 익숙해지는 상황, 도심 속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 나아가 남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적 장치로도 읽힌다. 이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아쉽게도 볼 수 없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습작도 만날 수 있다.

‘뉴잉글랜드’ 섹션은 미국 메인주의 작은 어촌인 오건킷 등을 표현한 풍경화들로 구성됐다. 이중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1930~1933)는 지역 우체국장에게 빌린 집을 그린 작품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악관 집무실에 걸었던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호퍼는 사실적인 풍경에 자신의 내면 세계를 반영한 풍경화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일몰을 배경으로 철길 옆의 신호탑과 녹색 언덕을 담은 ‘철길의 석양’은 기차 창문 너머로 목격한 장면인 것 같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 

호퍼는 아내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했는데, 여정 중 길 위에서 얻은 인상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특히 호퍼 부부가 자주 찾은 메수추세츠주 ‘케이프코드’ 섹션에서는 호퍼가 가장 좋아한 작품으로 알려진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을 비롯해 뉴욕의 주류 밀매업소를 소재로 한 유명작 ‘오전 7시’(1948) 등이 완성됐다. 

마지막으로 ‘조세핀 호퍼’와 ‘호퍼의 삶과 업’에서는 말년작인 ‘햇빛 속의 여인’(1961)을 비롯해 초기 삽화들, 다양한 기록자료 등을 통해 호퍼의 삶을 살펴본다. 

특히 아내 조세핀 호퍼(1883~ 1968)는 지금의 호퍼를 있게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미술학교 동문으로 아내이자 동료 작가이며, 호퍼의 작업을 지지하고 비평해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전시에서는 조세핀이 모델로 등장하는 수채화와 유화, 드로잉을 소개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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