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가수(歌手)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가수(歌手)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 / 이동순
  • 이동순 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23.05.08 13:38
  • 호수 8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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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힘든 세상살이에 찌든 대중들에

가수는 노래로 위로하는 사람

얼마 전 작고한 가수 현미는

자신도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전국 누비며 위로하던 여성가수

가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영어사전에는 ‘singer’, ‘artist’, ‘vocalist’ 등으로 압축하고 있네요. 인기가수, 발라드 가수란 명칭으로도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수의 역할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가수는 단지 노래를 부르기만 하는 사람일까요. 그건 분명 아닐 테지요. 그가 부른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와 격려가 될 때 비로소 가수의 진정한 존재감이 살아날 것입니다. 

세상살이는 워낙 힘들고 가파른 것이어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데 가수는 그런 역할로 새로운 생기와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지요. 그런 점에서 노래 한 곡이 주는 위로와 격려의 힘을 가볍게 볼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수는 하나의 철저한 운명 속에서 빚어지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 운명적 굴레 속에 자기도 모르게 가수가 되어버린 그런 사례도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첫돌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받아야 할 따뜻한 사랑을 잃어버린 아기는 냉혹한 세월 속에 무서운 고독을 겪으며 자랐습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이 너무 그립고 부러워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지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제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가슴 속에서 불러일으키던 하나의 습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가수의 노래를 즐겨들었는데 그것도 여성가수의 곡들입니다. 지금 추정해보면 여성가수의 목소리 속에서 제가 듣지 못했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찾아내려고 했었나 봅니다. 나아가서는 여성가수의 목소리를 어머니의 목소리와 통합시킨 것이지요. 

아무튼 여성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불안하던 가슴이 차츰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눈물 짓던 친구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그분들은 가끔 집으로 저를 불러 옛 노래 몇 곡을 불러달라고 하셨지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반대표로 노래시합에 나간 적도 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막걸리 집에서 늘 제 노래를 재촉하던 친구들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군복무시절에는 제대를 앞둔 고참 병사들이 신참인 저를 앞에 세워놓고 줄곧 ‘노래 일발 장전’이라 외치던 우스꽝스런 기억도 떠오릅니다. 

대학교수가 된 이후로는 옛 음반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연구하며 그 의미와 가치를 분석하는 논문을 써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저서도 여러 권 펴내었지요. ‘한국 근대 대중가수 열전’이란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활동했던 가수 53인의 생애와 활동을 정리한 방대한 책입니다. 그러다 보니 방송국에서 옛 가요 프로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서 여러 해를 MC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요를 해설하고 노래를 들려주는 강의를 다니기도 했는데 때로는 그 노래들을 제가 직접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노라면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격정적으로 동참했습니다. 

2015년 8월 26일의 일입니다. 저는 그 무렵 조항조와 한서경, 두 가수가 진행하던 부산 KBS TV 토크쇼 ‘가요1번지’에 단골 패널로 출연했습니다. 그날 초대가수는 바로 가수 현미였습니다. 프로그램 전개 방식은 전체 출연진들이 미리 배석하고 제가 뒤늦게 등장하는 연출이었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을 때 현미는 “어머 저 꽃미남이 누구야?”라며 대뜸 조크했습니다. 거침없는 화법이었지요. 일순 당황했으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이후 1시간가량 녹화를 진행하는데 역시 가수 현미의 활기찬 매너와 화술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능수능란, 박장대소 등으로 전체 출연진들을 온통 혼자서 장악하더군요. 

이윽고 녹화가 끝이 나고 늦은 점심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하는데 그녀는 등을 돌린 채 한쪽 구석에서 혼자 쓸쓸히 했습니다. 그 구부정한 뒷모습이 몹시 처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정적으로도 액운이 많았고 혼자 온갖 산전수전 다 겪어가면서도 이 분단조국의 산천과 무대를 누비며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여성가수입니다. 

여러 형제자매들이 전쟁 시기에 남으로 내려왔지만 함께 오지 못한 동생이 또 북에는 남아있습니다. 그녀는 북의 동생들을 만나러 중국으로 날아갔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매상봉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10년 아래인 동생은 언니보다 오히려 10년이나 언니처럼 보였습니다. 

고생 속에 겨우 생존을 부지해가는 아우를 만나고 돌아온 현미는 여러 날 눈물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전쟁 통에 남쪽으로 내려온 평양 출신의 사랑스러운 디바, 그녀가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TV에서 현미 특집을 보는데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서 녹화하던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젖어오더군요.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한도 많았던 세상, 안녕히 다녀가세요. 모든 것 툴툴 털고 홀가분히 다녀가세요. 당신은 이 나라의 가수로서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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