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출생의 정지(?)
죽음과 출생의 정지(?)
  • 관리자
  • 승인 2009.07.24 10:51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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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칼럼] 황진수 한성대학교 교수
▲ 황진수 한성대 교수
어느 나라에서 왕이 모든 사람의 죽음을 중지시켰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도 없어졌고, 교통사고로 사망 직전에 있는 사람도 죽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죽음 자체가 중지된 것이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니! 국민들은 축하하는 의미로 가정마다 국기를 게양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문제가 생겼다. 사람이 죽지 않음으로 인해 생성된 사회문제였다. 우선 장례업자들이 망하게 되었다. 사람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생명보험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업자들은 궁여지책으로 동물이나 곤충의 장례를 주된 영업으로 바꾸었다. 생명보험의 경우도 가입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정부에서는 80세를 기준으로 그 이후부터 새로운 보험에 들도록 법을 만들었다.

종교계에서도 죽음의 의미가 사라짐으로써 ‘신비성’이 줄어듦에 항의하고, 정부는 노령연금의 계속 급여로 재정파탄이 나게 된다. 또 개인의 경우에는 고조, 증조, 조부모, 부모가 살아계심으로 인해 이들을 돌봐 드려야 함과 동시에 자신이 늙을 경우 자신을 돌봐야 할 아이들을 걱정한다.

어떤 노인은 구차하고 피곤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가 죽는다. 어떤 가족은 늙은 조부모를 내다 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때 마피아가 등장해 노부모를 버려주는 사업으로 돈을 번다.

노인 인구만 계속 늘어나고 죽는 사람이 없게 되자 그 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정부에서 특별 등기우편으로 사망예정통보서를 당사자에게 배달하고, 배달된 이후 10일이 되는 날 그 사람이 죽도록 한 것이었다.

사망통고 편지를 받으면 그 사람의 태도는 어떠할까. 경건히 자기 인생을 반성하면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까. 누구의 말마따나 사과나무를 심을까. 그런데 상황은 어지러웠다. 마지막 10일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어떤 사람은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망나니짓을 했다. 어떤 이는 우울증에 빠져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망통보서를 배달하러간 어느 여성배달원이 사망대상자를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망예정일이 10일이 지나서야 당사자를 만났던 것이다. 사망통보서를 받을 사람은 첼리스트였는데, 표정이 너무 맑고 천진난만한 것을 보고 여성배달원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그녀는 사망통보서를 전달해주지 않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

위 이야기는 소설의 한 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것이 1948년인데 그 후 100년이 되는 2048년경에는 인구가 4234만 명이 되고, 그 가운데 38.2%가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2009년 현재 전체 인구 대비 노인인구 11.0%에서 40%에 가까운 사람이 노인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출산율 감소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13명으로 세계 평균 2.56명의 절반 수준이다. 선진국의 1.64명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장수노인의 증가는 ‘죽음의 정지’로 해석되고, 이와 함께 ‘출생의 정지’도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소극적, 우회적 출산율 장려 정책으로는 인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획기적이고 혁명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이 하나 출산하면 일률적으로 1000만원씩 주고, 육아시설에 의한 부담을 정부가 해주고, 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공적기금으로 충당하면 어떨까. 출산장려정책에 대한 정책개발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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