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 도입 발빠른 행보
성년후견제 도입 발빠른 행보
  • 장한형 기자
  • 승인 2009.07.24 11:50
  • 호수 1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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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애인 보호 법적 기틀 마련돼야”
현행 민법 ‘피후견인 행위능력 전면박탈’ 문제 많아
자기결정권 존중하고 잔존능력 활용하는 제도 필요


성년후견제 도입을 위한 민법개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본지가 대대적으로 성년후견제 도입의 필요성을 보도(제73호, 2007년 6월 18일자)한 이후 2년여 만이다. 성년후견제란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불충분한 성인이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토록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노인 및 장애인 관련 26개 단체가 결성한 ‘성년후견제추진연대’는 최근 심포지엄을 마련, 성년후견제 도입을 위한 민법개정 방안을 논의했다. 성년후견제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어떤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 박종성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회장이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성년후견제추진연대' 발대 관련 기자회견에서 성년후견제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 자리에서 지적장애, 정신장애, 치매 등을 앓아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후견인을 두는 제도인 성년후견제 도입을 추진하는 단체의 활동경과를 보고하고 활동방향을 소개했다.

▶현행 민법상 한정·금치산제도
현행 민법은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즉 의사능력이 불충분한 ‘무능력자’를 미성년자와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 및 금치산자(禁治産者)로 구분하고 있다.

미성년자는 친권후견이 적용돼 부모가 후견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한정치산자와 관련, 민법 제9조는 ‘심신이 박약하거나 재산의 낭비로 자기나 가족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는 자’로 규정하고, 이들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후견인 또는 검사의 청구에 의해 한정치산을 선고받도록 하고 있다. 한정치산자가 법률행위를 하려면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후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금치산자는 ‘심신상실(心神喪失)의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서 법원으로부터 금치산의 선고를 받은 사람’(민법 제12조)을 뜻한다. ‘심신상실’이란 정신에 장애가 있어 대체로 정상의 판단능력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청구권자는 한정치산자와 같다. 금치산자에게는 후견인이 있게 되며, 후견인은 금치산자의 요양·간호는 물론 그 재산상의 행위를 대리한다.

한정치산 및 금치산 제도는 치매환자 또는 지적·정신적 장애인을 위해 마련됐지만 충분한 효과를 갖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선, 현행 민법은 행위무능력자를 심신상실과 심신박약 등 두 가지 유형으로만 지나치게 단순화 해 정신능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지원이 필요한 노인과 정신지체장애인에 적합하지 않다.

또 배우자, 친척 등 청구권자가 없는 경우 검사가 유일한 청구권이다. 그러나 검사가 한정치산 또는 금치산을 청구해 주는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현행 민법은 한정치산 및 금치산 제도의 목적을 재산관리 능력을 보충하는 데 두고 있어 재산이 없는 경우 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며,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이용 과정 등 재산관리 이외의 일상생활에서의 신상보호는 아예 배제되고 있다.

이밖에도 한정치산자는 후견인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만, 금치산자의 경우 모든 법률행위에 대해 획일적으로 취소하는 등 당사자의 잔존능력과 자기결정권을 무시함으로써 고령자는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행 후견인제도의 문제점
현행 민법은 후견인을 1명으로 제한하고 있고, 기혼자의 경우 배우자가 자동으로 후견인이 되도록 하고 있다. 후견인의 순위는 피후견인의 직계혈족 및 모계혈족을 포함한 방계혈족 중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순위자가 여러 명일 경우 연장자가 후견인이 되도록 하고 있다. 법률 규정에 따른 후견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는 가정법원이 친족이나 기타 이해관계인의 청구에 의해 후견인을 선임하게 된다.

그러나 현행 민법은 자연인만을 법정후견인으로 규정, 고령자나 장애인 보호를 위해 후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복지법인 등 각종 공익법인은 제외하고 있다.

또 배우자가 있는 경우 해당 배우자가 1차적으로 후견인으로 선임되지만 한정치산 또는 금치산 선고를 받은 피후견인이 고령일 경우 그 배우자 역시 고령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후견인이 될 수 있는 배우자를 법률상 배우자로 한정, 사실상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른 경우는 제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후견인 대상 순위자가 여러 명일 때 최고령자를 지정케 한 규정도 문제다. 고령자에게는 당사자보다 더 고령인 사람이 후견인이 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금치산자의 경우 현행법이 한정한 후견인 1명이 재산관리와 신상보호를 모두 맡고 있지만, 배우자 등이 아닌 경우 신상보호에 한계가 있는데다 후견인이 배우자라도 재산관리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한정치산자의 후견인은 재산관리권과 대리권만 갖게 돼 신상보호에 관한 권리의무는 없고, 금치산자의 후견인의 경우 신상보호를 담당하나 일상생활지원이 아닌 요양보호에 국한되는 문제가 있다.

이밖에 후견인을 결정할 때 자신의 의사 및 능력과 무관하게 법규정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고, 후견인이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 할 때 제재할 방법도 없는 데다 현행법상 후견감독기관인 친족회와 가정법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성년후견제 도입과 쟁점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인구도 급증하고 있지만 판단능력이 불충분한 고령자의 일상생활과 법적행위를 보호할 만한 제도적 장치는 한정치산 및 금치산제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을 전면 박탈하는 매우 경직된 제도라는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피후견인이 의사능력을 상실하는 과정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잔존능력을 최대한 활용 가능한 새로운 후견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른바 ‘성년후견제’로 불리는 새로운 제도는 노인과 지적·정신적 장애인의 재산권 보호는 물론 특히, 고령화 사회에 대응해 가벼운 치매질환을 가진 노인의 법률생활 및 일상생활의 충실한 지원에 목적을 두고 있다.

성년후견제 도입을 위해 지난 17대 국회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본지 제73호 보도)이 2006년 8월 제출한 ‘성년후견에 관한 법률안’과 대법원이 같은 해 12월 마련한 민법개정안, 그리고 성년후견추진연대가 2007년 11월 초안한 민법개정안 등 모두 3개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이영규 정책위원장(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은 “성년후견제는 최소한의 보호에서 출발,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능력과 필요성의 정도에 따라 유연하고 탄력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이용하기 쉬운 제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판단능력이 부족한 고령자와 장애인이 보호의 객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 권리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사회 속에서 생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고령자와 장애인의 부족한 부분만큼 후견인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가정 또는 시설 등 서비스 받을 장소를 선택케 하는 등 복지정책과 결합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입법과 관련, 이영규 정책위원장은 “현행 민법의 후견제도는 미성년과 성년을 함께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분리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행위능력이나 후견에 관한 규정을 현행 민법이 규정하고 있고, 미성년자에 대한 규정도 고려해 특별법보다는 민법개정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밖에 성년후견제추진연대는 사회복지사 및 사회복지법인 등도 후견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족이 후견인이 될 경우 일정한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역할을 늘려 사회복지사 등의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경우 후견인 교육업무와 감독기관의 역할도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협회 등 사회복지기관의 기능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성년후견제추진연대의 제언이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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