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삶이 힘든 이유는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삶이 힘든 이유는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3.05.30 10:37
  • 호수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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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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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주고 잡초 뽑고 새 식물 심는 등 정원은 절대 완성되지 않고 언제나 끝없는 진행형이듯

인생 역시 절대 완성되지 않고 진행하며 변화·개선 이뤄내는 것

오월의 정원이 온통 흰빛이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그 빛에 하얀 샤스타데이지와 손수건을 걸어놓은 듯한 산딸나무의 네 장 잎이 별처럼 흰빛으로 정원에 떠 있기도 한다.

속초의 200평 남짓한 나의 정원은 실은 몇 그루의 감나무, 밤나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걸 내가 직접 심고, 씨를 뿌렸다. 그중에는 작년에 사라진 단풍나무처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간 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참 성실하게 잘 자라준다.

요리사가 자신만의 요리 레시피가 따로 있듯이 정원사에게도 정원의 기법이나 선호하는 조합의 식물군이 각기 다르다. 나의 경우는 진한 원색의 색감을 한꺼번에 많이 쓰기 보다는 연한 은색, 흰색, 푸른색, 보라, 분홍의 조합에 도드라지는 색감의 주황, 빨강, 진한 자주를 포인트 색감으로 쓰는 조합을 좋아한다. 

또한 식물을 돌보는 일도 일단 심어주고 나면 그냥 좀 스스로 살 수 있도록 방치한다. 때문에 물 주기를 매일 하기보다는 마른 날이 지속되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듬뿍 주는 것으로 끝낸다. 그래야 식물들 스스로 물을 찾아내려 가는 본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방목형 가드닝(?)은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 화단 속에 잡초가 자리를 잡고 있을 때가 많다. 잡초는 딱히 과학적으로는 정의도 없는 내가 키우는 풀과 저절로 굴러온 풀 정도의 차이일 뿐인데, 정원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불청객이 될 수밖에 없다. 

잡초의 가장 큰 불편함은 사실 예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너무 강인한 생명력이 문제다. 다른 식물들과 조화를 맞춰 적당히 자리 잡으면 좋겠지만 그 세력을 너무나 왕성하게 키워 결국은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고 만다. 

이러니 정원사는 눈에 불을 켜고 화단 사이를 헤집어 잡초를 찾아내고, 잡아채고, 빼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잡초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도 아니고 이미 뿌리를 내린 잡초는 뽑아내고, 잘라도 언제든 다시 또 잎과 줄기를 올리기 마련이다. 

여름철 정원사의 일은 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물주기, 진 꽃대 잘라주기, 그리고 잡초제거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가 심은 예쁜 꽃보다 잡초를 하루종일 더 많이 봐서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잔상으로 잡초가 떠오른다. ‘이런 젠장, 예쁜 꽃을 그리도 많이 심었건만 눈에 하루 종일 잡초만 담아두었으니 눈 감아도 잡초만 보일 수 밖에!’ 쓴웃음이 나온다.

세상 일이 가끔은 이런 듯하다. 정작 이 일을 한 목적이 있는데 그보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은 하기 싫고, 지금 당장은 보기 안 좋은 일을 선행해야 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잡초를 뽑기 위해 정원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예쁜 정원을 만들려면 어쩔 수 없이 잡초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큰 딸이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아무리 주변 어른들한테 물어봐도 “나 지금 행복하다” 이런 말 하는 분들이 없고 다 “힘들다, 고생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이렇게만 말하는데 이렇게 살 거면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질문이었다. 

질문이 하도 심오하고, 게다가 뭐라 답할지 나도 잘 몰라서 “에고, 엄마가 찾아보고 알게 되면 너한테 바로 말해줄게”라고 했는데 아직도 답을 못 주고 있다. 

다만, 딸이 아직도 혹시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미 오십을 훌쩍 넘어 살아보니 이런 게 아닐까 집히는 구석이 있어 이렇게 답을 줄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정원은 매일 들여다보고, 다듬어주는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정원은 방치한 정원일 수밖에 없다. 삶이 힘든 건 내 삶을 방치하지 않고 매일 다듬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잡초지만 나 역시도 끊임없이 매일의 일상으로 뽑아주고, 잘라주면 어느 정도의 균형이 생겨난다. 여기에 철마다 새로운 식물을 찾아내 심어주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식물들이 잡초와의 경쟁을 이기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정원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재료가 돼 주기 때문이다. 

지금 현존하는 정원사 중 한 명인 영국의 정원사, 몬티 돈(Monty Don)은 “정원은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진행형일 뿐이다. 그러나 이 정원의 끝없는 진행 속에 변화와 개선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식물심기”라고 했다. 

이 문장에서 정원을 인생으로 살짝 바꾸어도 같은 의미일 듯하다. “삶은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진행형일 뿐이고, 그 진행 속에 내 삶의 변화와 개선을 이뤄내고 싶다면 새로운 꿈을 다시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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