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젊은 노인’또는‘나이든 청년’
[금요칼럼] ‘젊은 노인’또는‘나이든 청년’
  • 관리자
  • 승인 2010.02.26 11:51
  • 호수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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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젊은 노인’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식생활이 향상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장수할 뿐 아니라 노인이 되어도 옛날에 비해 늙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웰빙바람이 불어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 뿐 아니라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도 웬만하면 아침산책이나 헬스센터에 나가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이제는 60대는 말할 것도 없고, 70대가 되어도 젊은이들처럼 원기왕성한 사람들이 많다.

노인문제전문가들은 노령자를 초기노령자(65~74세)와 후기노령자(75세 이상)로 분류하는데 이 같은 방식을 따르면 초기노령자를 젊은 노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최근 모 대학에서 교수의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연장키로 한 것도 젊은 노인들로 하여금 더 오래 학교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럴 경우 나이든 교수가 젊은이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요즘 세계적 경제위기로 각 대학이 납입금을 동결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앞으로 경제가 회복되는 대로 재정확충을 통해 전임교수 자리를 늘려 젊은 교수들로 충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젊은 노인들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용모는 젊은이 못지않게 팽팽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사고방식이 굳어버린 초기노령자의 경우 진정한 의미에서 젊은 노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젊음의 특징을 정력, 호기심, 창의, 용기라 한다면 젊은 노인은 젊음의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노력하면서 노인의 특성인 성숙, 지혜, 온화함, 인내, 관용 같은 덕목을 함께 갖춰야 할 것이다.

최근 언론계 선배 한 분이 재미있는 수필집을 보내와 필자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80세가 다 된 분이 수필집을 낸 사실 자체도 그렇거니와 거기에 실린 글들은 하나같이 금쪽같은 값진 내용들이었다. 그는 젊은 노인을 ‘나이든 청년’이라고 표현하면서 “일상에서 감동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항상 명랑하고 쾌활하며 활달하고 낙천적인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노인이야말로 나이든 청년”이라고 했다. 반대로, 그는 정렬이 식어 평균체온보다 차가운 가슴을 지닌 노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열이 식은 탓으로 과거의 뜨거운 열기가 세월 속에서 동맥경화로 막혀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심한 경우 이런 노인들은 강기슭에서 쉬거나 먹이사냥을 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화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엎드려 있는 늙은 악어처럼 감각경화증에 걸려 감각이 둔화되다 못해 고갈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인들이 나이를 들더라도 늙은 악어처럼 되지 않으려면 몸과 마음이 굳어지지 않도록 유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기야 필자도 가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감동을 모르고 웃음을 잃은 노인들의 모습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해관계에 매여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거나 사회정의를 옹호하기보다는 노인 특유의 이기심과 탐욕과 아집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도 저런 행동을 한 일은 없는가, 또는 본심은 아니지만 남에게 차가운 가슴을 지닌 악어 같은 사람으로 비친 일은 없었는지 자문해 본다.

젊은 노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요즘은 불경기로 인해 50대, 심지어는 40대에 실직해서 은퇴를 강요당한, 또 다른 범주의 젊은 노인들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55~64세의 연령층을 ‘준노인’이라고 하는데 요즘 50대 실업자들은 준노인에도 속하지 않는 멀쩡한 장년층이다. 이들은 육체적으로는 노인이 아니지만 잘못하면 정신적인 노인이 될 우려가 있다.

직장에서 쫓겨난 뒤 배신감, 박탈감, 상실감, 허탈감, 무력감, 고독 등으로 인해 정신적 타격을 입고 조로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조로증에 걸리면 정신적으로 망가질 뿐 아니라 외모에도 나타난다. 하루빨리 경제가 회복돼야 이런 범주의 젊은 노인들이 없어지고 사회가 명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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