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배지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두 번째 임기를 맞이했다. 36분에 걸친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이미 예고한 대로 ‘미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안보와 통상 질서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홀에서 두 권의 성경을 받쳐 든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옆에서 오른손을 들고 취임 선서를 하며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시대는 이제 시작된다”고 선언한 뒤 “나는 매우 단순히, 미국을 최우선시할 것”이라며 집권 1기 취임사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국정의 모토로 내세웠다.
통상 및 국내 정책 면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선명하게 제시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전기차 우대정책을 포함한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산업정책인 ‘그린 뉴딜’의 종료를 선언했다.
이는 한국 자동차·배터리 업계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 언급이 없어 파급력은 미지수다. 의회 동의가 필요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보다는 전기차 구매와 배터리 생산업체에 지급하는 보조금과 세액공제가 폐지되거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관세’ 움직임이다. 트럼프 공언대로 세계에 10~20%의 보편 관세,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 중국에 최대 60%의 관세를 매기면 국제 무역이 크게 위축되면서 한국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안보 관련 현안들이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합의된 2026~2030년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증액 요구를 시작으로 현재 2만8500명 규모인 주한미군의 감축 혹은 ‘대중 견제’로의 성격 조정, 북핵 용인 방식의 북-미 타협 등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남부 국경에 대해서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배치하는 한편, 서류 없이 입국한 사람들의 심사 대기기간 중 미국 내 체류를 불허하기로 하는 등 강경한 불법 이민자 차단책을 발표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에는 남녀 2개의 성별만 있게 될 것”이라며 과거 민주당 정부 때 강화된 성 소수자 권익 증진 정책을 대대적으로 폐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이날 트럼프는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핵보유국)라고 지칭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구체적인 대북정책이 나오기 전 즉흥적인 답변이긴 하나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뒤집는 대통령 발언이어서 충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구체적인 의중은 불확실하지만, 자칫 한미가 견지해왔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 수준의 ‘스몰 딜’을 추진한다면 북핵을 영원히 이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겐 말 그대로 재앙이다. 동북아의 ‘핵 도미노’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에 트럼프 2기 대북정책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비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손 놓고 있다가는 자칫 북핵 논의가 북한 정권의 입맛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북한 비핵화 원칙이 허물어진다면 우리의 안보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제 현실이 됐다. 오히려 1기 때보다 더 강력하고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대통령 부재의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외교적 선제 교섭과 접촉을 거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한국의 안보와 경제가 영향을 덜 받도록 ‘트럼프 폭풍’ 차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