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97] 죽마고우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97] 죽마고우
  • 이승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 승인 2023.07.10 10:45
  • 호수 8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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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

고송(古松)처럼 기이한 모습에

한바탕 웃으니 이내가 짙푸르다.

조정 반열에서 본 모습과 약간 다르니

신선 거처의 만남이 참된 만남이지

나무 위로 높이 솟은 누각에서 풍광을 보니

경치가 툭 트여야 먼 곳의 봉우리가 보이지.

두 노인 무탈하게 건강하려면

나막신과 지팡이로 날마다 산수를 향해야지

貌態魁奇似古松 (모태괴기사고송)

呀然一笑翠嵐重 (하연일소취람중)

差殊玉筍班中見 (차수옥순반중견)

眞合金華石上逢 (진합금화석상봉)

樓閱暉陰高出樹 (루열휘음고출수)

境要明濶遠開峯 (경요명활원개봉)

倘敎兩老康無疾 (당교량로강무질)

鎭向溪山並舃筇 (진향계산병석공)

- 이헌경(李獻慶, 1719~1791) 『간옹집』 〈상서 채백규의 번리 산장에서 운자를 불러 함께 쓰다. [蔡尙書伯䂓樊里山庄, 呼韻共賦.]〉


간옹 이헌경은 본관 전주(全州), 자 몽서(夢瑞), 초명 성경(星慶)으로 영·정조 연간 남인 문장가로 일컫는 오봉산(五鳳山) 중 한 사람이다. 채제공과는 약관의 나이에 약봉 오광운의 문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1743년(영조19) 문과에 함께 합격한 동방(同榜), 동당(同黨)으로 나이 차이도 이헌경이 1살 더 많았으니, 동년(同年)이라고 할 수 있다. 채제공의 한글 행장인 『상덕총록』에 따르면 채제공과 이헌경은 문장을 강마하는 벗이었다. 이헌경은 많이 읽는 데서 힘을 얻었고, 채제공은 궁구하는 데 힘을 쏟았으니, 공부의 길이 다르면서도 그 귀취는 같았다고 한다.(중략) 

위 시는 채제공이 1779년(정조3)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에게 문안하는 문제로 소론의 서명선과 한바탕 대립 후 명덕동에 은거했던 시절, 이헌경이 방문하여 지은 3편의 연작시 중 첫 번째 작품이다.(중략)

수련과 함련에서는 명덕동에 은거한 채제공의 모습을 고송에 비유하였다. 몸은 비록 수척하지만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는 이내를 흔들 만큼 호탕하다. 함련의 玉筍班(옥순반)은 玉筍班列(옥순반열)로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조정을 가리키는 말이고, 金華石室(금화석실)은 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이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에서 신선이 되어 50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가지고 왔다. 즉, 조정 관료로서 경건하고 엄숙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니, 은거하여 초탈하면서 소박한 모습이야말로 채제공의 본래 면목이라는 의미이다. 경련에서는 누각 맞은편 산을 바라보는 모습을 포착하였는데, 그 의취는 도연명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에서 가져온 듯하다. 같은 제목의 셋째 수를 보면, ‘얼굴 씻으려는데 마침 맑은 물이 있고 그대로 고개 들어 아스라한 산을 보노라.’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도연명의 의취를 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련은 채제공의 ‘그대 머리 나의 수염 다 하얗게 세었으니, 그림 같은 이곳에서 둘이 함께 소요하세.’라는 구절에 화답한 부분으로 두 사람 간의 교유를 잘 드러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하략)

이승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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