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 전, ‘신’을 쫓던 붓과 물감이 ‘인간’으로 향하게 된 까닭
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 전, ‘신’을 쫓던 붓과 물감이 ‘인간’으로 향하게 된 까닭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7.17 13:25
  • 호수 8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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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유럽의 고흐, 고갱 등 근현대 유명화가의 작품을 통해 미술 주제가 신과 종교에서 인간과 일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다룬다. 사진은 라파엘로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왼쪽)과 토마스 로렌스의 ‘찰스 윌리엄 랜튼’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유럽의 고흐, 고갱 등 근현대 유명화가의 작품을 통해 미술 주제가 신과 종교에서 인간과 일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다룬다. 사진은 라파엘로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왼쪽)과 토마스 로렌스의 ‘찰스 윌리엄 랜튼’의 모습.

英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 50여점 통해 근대 서양미술사 조명 

라파엘로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 우표에도 실린 ‘레드 보이’ 등 전시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보티첼리(1445?~1510), 라파엘로(1483~1520), 타치아노(1490~1576), 카라바조(1571~1610), 벨라스케스(1599~1660), 렘브란트(1606~1669), 터너(1775~1851), 마네(1832~1883), 르누아르(1841 ~1919), 그리고 반 고흐(1853~1890)까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이다. 저마다 개성이 강한 이들의 작품을 쫓다보면 한 가지 특징에 도달한다. 그림의 주제가 ‘종교와 신’에서 ‘사람과 일상’으로 서서히 변모해 간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부터 바로크 미술을 거쳐 인상주의 회화까지, 서양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9일까지 진행되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전에서는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명화 50여점을 통해 유럽회화사를 조명한다. 특히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랜드 투어(17~19세기 유럽 상류층에서 유행한 이탈리아 인문학 답사 여행), 프랑스대혁명, 산업혁명 등 유럽의 변천사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에서는 르네상스 대표 작가인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의 작품을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간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한 변화를 소개한다. 이 시기 화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관찰한 세계’에 주목했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묘사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 라파엘로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이다. 

‘가바의 성모’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궁의 ‘아테네 학당’(1508~1511)을 제작하던 당시 함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의 소재만 보면 종교적 색채가 물씬 풍기지만 인간과 닮은 신, 섬세한 손가락 묘사 등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1525 ~1578)의 ‘여인’(1556-1560년경)에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림 속에서는 한 여인이 다홍색의 반짝이는 호화로운 옷을 입고 고급스러운 부채를 들고 있다. 그런데 여인은 부채 손잡이를 손으로 가리고 있다. 당시 손잡이 재료가 귀해 사치금지법 규제를 받아서 이를 가린 것이다.

이어지는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에서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의 작품과 함께, 가톨릭 개혁 시기 그려진 작품을 소개한다. 이중 이번 전시 포스터로 사용된 카라바조의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 가장 눈길을 끈다. 카라바조는 극적인 빛을 사용해 나르키소스, 메두사, 바쿠스 등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인물과 골리앗 등 성서 속 인물을 표현했다. 이런 카라바조가 소년이 도마뱀에게 물리는 순간을 주제로 내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회화가 인간의 삶으로 시선을 더 돌렸음을 의미한다.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계몽주의의 확산과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차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에서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확장돼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18~19세기 작품들을 조명한다. 이 시기부터 개인의 삶을 기록한 초상화가 유행했는데 그림이 신을 찬양하기 위한 도구에서 탈피했음을 의미한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드 보이’로 알려진 ‘찰스 윌리엄 램튼’(1825)이다. 붉은 벨벳 재질의 화려한 옷을 걸친 소년의 하얗게 빛나는 얼굴과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로 꼽히는 토머스 로렌스(1769~1830)의 대표작이다. 영국의 1대 더럼 백작 존 조지 램튼의 주문을 받아서 그의 아들 찰스 윌리엄 랜튼의 6~7세 때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13세에 결핵으로 사망했지만 그림은 영국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1967년에는 영국에서 우표에 실린 최초의 그림이 됐다. 

18세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화가들의 관심은 근대화된 도시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된다. 화가들은 점차 독창적인 색채나 구성을 바탕으로 화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등장한 인상주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무엇을 그리나’에서 탈피해 ‘어떻게 독창적으로 그릴까’로의 인식 변화를 살펴본다. 

고흐, 고갱, 마네 등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주제 측면에서는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을 눈여겨 볼만하다. ‘카페 콩세르’는 오페라나 발레 극장과 달리 모든 좌석의 입장료가 동일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고 술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즉, 예술가를 비롯해 노동자, 중산층이 한데 어우러지는 평등한 공간으로 특권층의 예술이 평범한 개인과 일상으로 완전히 확장됐음을 상징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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