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막내로 항일운동 장세국 어르신
광복군 막내로 항일운동 장세국 어르신
  • 연합
  • 승인 2009.08.14 15:02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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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때 중국으로 떠나… 미국 첩보요원 활동
“비록 나이는 10대였지만 조국 해방을 위한 투지는 어른 못지않았습니다.”
광복절을 3일 앞둔 12일 경기도 의정부시 자택에서 만난 장세국(81) 어르신은 일제말 중국에서의 광복군 활동을 이렇게 회상했다.

고향이 평안북도 용천인 장 어르신은 1942년 독립운동을 하자는 친구를 따라 어머니와 두 동생을 두고 중국으로 떠났다. 이 때 그의 나이는 14살.

장 어르신의 아버지는 용천에서 농민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장애인이 됐으며 장 어르신이 9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이는 장 어르신이 광복군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장 어르신은 ‘북방중학’이라는 중국인 학교에 입학해 중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며 이들과 산둥(山東)성 성도인 지난(濟南)시를 오가며 반일시위에 참가했다.

장 어르신은 일제의 침략상과 반일사상을 담은 전단을 비밀리에 배포했으며 지난시의 중학교 신입생 환영식장에서는 반일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장 어르신이 16살 되던 1944년 광복군 제3지대에 자원 입대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는 군수물자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등 주로 일본군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어린 나이는 일본군의 의심과 감시를 피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1945년 3월에는 일본군이 휴일에 자주 찾는 베이징의 한 극장을 폭파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 어르신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첩보국(OSS) 요원으로 뽑혀 충남 서산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광복을 맞아 중국에 남았다.

장 어르신은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귀덕지구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1946년 고향으로 돌아온 뒤 광복군을 따라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후 그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보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육군에 입대해 이등병으로 군 복무를 시작, 1951년 상사로 제대했다.

현재 그는 아내와 딸 부부, 손자·손녀와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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