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50주기 맞은 영원한 액션스타 이소룡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50주기 맞은 영원한 액션스타 이소룡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7.21 08:47
  • 호수 8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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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1973년 7월 20일, “아비오”라고 외치는 특유의 기합과 노란색 트레이닝복, 쌍절곤으로 상징되는 이소룡이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32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의 소식을 듣고 전 세계 영화팬들을 슬픔에 빠졌다.

이소룡은 1940년 홍콩의 유명 경극 배우 이해천과 중국과 영국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아역 배우 활동을 시작했는데 몸이 약해 잔병을 달고 살았고 끈기도 없어 싫증을 잘 냈다고 한다. 하지만 무술을 배우면서 달라졌다. 세계를 뒤흔드는 액션 스타가 됐다.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떠났다. 1961년 워싱턴대학교 연극학과에 들어간 그는 공부에도 눈을 떠 지성과 체력을 모두 갖춘 성인으로 성장했다.

이소룡은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서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무술 시범을 우연히 본 제작자의 눈에 들어 오디션을 봤지만 조연과 단역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실망한 이소룡은 홍콩으로 돌아간다.

이 결정은 이소룡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1971년 ‘당산대형’이 개봉했고 당시 홍콩에서 역대 흥행 1위였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치며 자신의 이름 석자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듬해 그 유명한 ‘정무문’을 제작했는데 트레이드 마크인 쌍절곤과 “아비오”는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맹룡과강’, ‘용쟁호투’를 공개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1973년 개봉한 ‘사망유희’를 촬영하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남은 부분은 대역이 촬영했는데 실제 인물과 외모 차이가 두드러져 아쉽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다만 이소룡이 직접 찍은 마지막 탑에서의 결투 신은 명장면으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그의 사인은 뇌부종이었다. 평소 복용하던 약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라는 게 중론이나 최근 이소룡이 허리부상으로 인한 통증을 극복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맞았던 스테로이드계 코르티손이 뇌혈관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소룡이 떠난 지도 벌써 50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유효하다. 그의 사후 태어난 필자 역시 어린 시절 비디오로 ‘정무문’ 등을 보며 열광했다. 성룡을 비롯한 많은 동양인 액션 스타가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이소룡 만큼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은 작품을 남기고 떠난 그의 부재가 유독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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