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의 새 패러다임, '돌봄'서 '섬김'으로
요양병원의 새 패러다임, '돌봄'서 '섬김'으로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8.18 21:16
  • 호수 1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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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스 클리닉 네트워크’ 한울·두울노인클리닉

 

▲ 로하스 두울클리닉 고영택(왼쪽) 원장, 한울클리닉 염형욱 원장은 수시로 서로의 병원에 들러 환자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요양병원 운영에 대해 토론한다.

과거, 병원에 가는 것은 참 서러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앓느니 죽겠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변변한 휴게시설도 없는 병원 복도에서 흡사 전쟁터 야전병원과 비견되는 소란함 속에 놓인 환자들. 병을 치료하기보다 오히려 넘치는 짜증에 분노가 폭발했던 기억이 한 두번씩은 있다.

노년층의 경우는 아예 보호자 없이 병원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 복잡한 수속에 젊은 사람도 길을 잃기 일쑤인 동선은 물론이요, 간호사의 ‘부르심’에 즉각 대응이 늦기라도 하면 대번 날아오는 짜증스런 반응들. 입원환자들은 말 그대로 시장판에 침대 하나 갖다 놓은 것처럼 소란스런 병실에서 외부의 온갖 자극에 노출되기 일쑤였다.

▲ 로하스한울클리닉 전경. 고급펜션같은 외관과 휴게시설은 이용자들의 만족감을 높여준다.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몸이 아파 아쉬운 것은 환자였고, ‘칼’을 쥔 것은 병원이었으니. 그러나 최근 의료서비스가 수요자 중심으로 개선 되고, 환자들에게 질환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등 서비스의 질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4인병실은 가정집처럼 정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다.
의료계 종사자들의 인식이 변한 덕에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서비스는 많은 향상을 거뒀다. 그러나 넘치는 환자와 부족한 시설, 시스템의 미비는 근본적으로 환자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엔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아예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단 한사람의 환자라도 더 진료하기 위해 효율을 짜내는 구조를 벗어난 것. 입원환자의 치료를 뛰어넘어 편하게 생활하고, 가족들은 근심을 벗어나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휴양’의 개념까지 도입한 병원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학회 등에서 의료시스템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몇몇의 의사들이 기존의 개념을 뛰어넘는 의료시스템을 구축해 보자며 의기투합해 만든 ‘로하스 클리닉 네트워크’가 대표적인 경우다.

2007년 봄, 로하스 클리닉 ‘한울’이 처음 경기도 퇴촌에 전원형 요양병원으로 출발한 후 2008년 5월 인근에 ‘두울’이 개관했다. 2008년 11월에는 경기도 안양, 그리고 2009년 6월 경기도 고양시에 도시형 요양병원이 세워짐으로써 ‘로하스 요양병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네 곳의 요양병원은 각 전문의들이 협진체계를 구축하고 환자에 따라 전원형과 도시형 병원의 특성에 맞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양병원의 특성상 급성기 환자보다는 만성기 환자 중심으로 병실을 운영하는 체제. 따라서 모든 병원이 각 과별로 전문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순환진료제를 실시, 1주일에 한번씩 한의사를 비롯, 서양 의학과별로 입원환자들의 건강과 병세호전 여부를 체크한다.

입원환자들에 대한 치료방법도 사뭇 다르다. 고가의 약물과 처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만족을 토대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자연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 어르신들이 마당에서 햇볕을 쬘 때 주로 이용하는 그네의자.
약물투여가 시급한 경우는 적절한 투약을 병행하지만, 기본적으로 심신을 쾌적한 상태로 유지하게 해 우리 몸의 자연치유 능력을 극대화 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합리적인 체제를 갖춰 절약하는 운영비는 다시 환자들에게 투자된다. 더 쾌적한 환경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료비용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통상,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 악순환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편의보다는 공동생활과 병원업무 위주로 짜여진 병원시설이 환자들에게 편안함을 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치료를 더디게 만들고, 자연치유능력을 앗아간다. 더욱 독한 약물과 처치를 반복하다보면 심신은 더욱 쇠약해져, 정작 병증은 완치가 되었을지언정 몸의 기운이 빠질대로 빠져 새로운 질환에 노출되는 경우를 맞기도 하는 것이다.
▲ 웃음치료사들이 병원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로하스 네트워크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고, 이를 선순환으로 돌려 놓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각 병원에는 물리치료실이 갖춰져 있고 전문물리치료사가 상주하면서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기다림 없이 정형·통증·신경 등 전문화 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입원실보다 약 1.5~2배 정도 넓은 여유로운 병실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스트레스 요인의 제거야말로 어떤 치료보다 선행돼야 할 가치라고 믿는 한울클리닉 염형욱 원장과 두울클리닉 고영택 원장의 이러한 시도는 벌서부터 좋은 결과를 낳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던 말기암 환자가 입원해 병세가 호전돼 퇴원한 경우도 있고, 치매부모 봉양에 지칠대로 지쳐 불화가 끊이지 않던 가족은 이제 어머니를 뵙고자 주말마다 병원에 들르는 것이 생활이 됐을 정도로 가족관계를 복원하기도 했다. 

▲ 로하스 두울쿨리닉의 텃밭. 고영택 원장과 간호사가 밭에서 수확한 늙은 호박을 수확하고 있다.
두울클리닉이 병원 산책로 사이에 조성한 텃밭은 어르신들의 소중한 공간이다. 입원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병원직원들과 함께 가꾼 작물들을 수확해 주말에 방문하는 가족들 손에 들려 보내기도 하고, 텃밭에서 딴 고추며 상추 등으로 삼겹살 파티를 열기도 한다.

한울클리닉의 경우 고급펜션을 연상케 하는 훌륭한 외관과 편의시설 등이 환자의 만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인공폭포의 물소리 외에 다른 소음은 거의 없으며, 햇빛을 쬐는 어르신들을 위해 설치한 그네의자 등이 이국적인 고급스러움을 풍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뒷산에서 불어오는 솔바람은 어떤 첨단의료장비나 약물로도 제공하지 못하는 최고의 심신안정제인 동시에 활력충전제다.

로하스 클리닉 네트워크의 정신이 ‘사람중심의 치료, 환자중심의 돌봄’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술자 위주의 편의는 배제된다. 다만,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에 모든 촛점이 맞춰져 있다.

한울과 두울 클리닉의 경우 넓은 병원 공간 중에서 원장실이 차지하는 공간은 기껏해야 책상 하나에 의자 한 두개 정도면 꽉 찰 정도이며, 그 흔한 응접세트도 없는 실정이다.

▲ 로하스 두울클리닉 전경.
그러나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은 뭐든지 최선의 것으로 준비된다. 휠체어 두 대가 교행해도 넉넉한 복도, 병실 당 간병인 1명이 상주하면서 주간보호가 아닌 24시간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며, 식사와 간식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다양한 오락 및 재활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삶의 해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특장점보다 더욱 강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따뜻한 미소, 친절한 응대. 환자를 기분좋게 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나 로하스의 정신은 단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직원들이 단지 급여를 받기 때문에 ‘교육받은 친절’을 베푸는 것은, 먹기 좋다고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계속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열량은 넘쳐 얼굴에 기름이 돌겠지만 정작 중요한 영양소는 결핍된, 보여주기 위한 돌봄이라는 것.

로하스의 모든 직원들은 친절보다는 진정성을 중시한다. 원장부터 나서서 어르신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자신의 부모와 같이 속엣말을 터 놓으며, 울고 웃는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일반적인 직장과 다르게 상사와 하급자의 구분도 없어 원장과 간호사, 환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공동체의 모습에 더 가깝다는 느낌도 든다. ‘병원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육중한 무게감은 온데 간데 없고 직원, 환자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오빠, 막내아들이 있을 뿐이다.

▲ 로하스 두울클리닉의 고영택 원장이 한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있다.

로하스 병원이 또 한 가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품위있는 죽음’이다. 탄생이 위대한 만큼, 죽음도 인간의 삶 속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호스피스의 개념이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지는 않지만,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들은 매우 중요하다. 

요양병원은 만성질환을 가진 고령자가 많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환자들은 자신은 볼 수 없는 ‘죽음’을 다른 동료의 몸을 통해 보게 된다. 따라서 살아온 길을 반추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평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 중 하나인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병은 대부분 치열한 경쟁관계에서 오는 강박과 스트레스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병을 고치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병이 생기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오랜 시간 이 사회가 꼬아 놓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시도한 것이 바로 ‘로하스 클리닉’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 로하스 두울클리닉의 야외테라스. 동무인듯한 어르신 두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한울클리닉의 염형욱 원장과 두울클리닉의 고영택 원장은 병원을 운영한다는 개념보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을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퇴촌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울노인클리닉 : 031-797-9114
두울노인클리닉 : 031-766-7061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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