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色이야기 42] ‘분홍방’은 어린 권문 자제의 과거 급제를 비꼬는 말
[한국의 전통色이야기 42] ‘분홍방’은 어린 권문 자제의 과거 급제를 비꼬는 말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3.08.14 11:08
  • 호수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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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방(粉紅榜)

홍색(紅色)은 오행 적색의 간색으로서 한국사에 기록된 종류는 56가지 정도 된다. 그 중에서 분홍(粉紅)은 밝은 홍색, 연한 홍색이다. 분홍의 분(粉)은 곧 백색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백색과 홍색을 배합하면 ‘밝은 홍색’이 된다. 

분홍색은 양반부녀의 겉옷과 서민과 천민 남녀의 속옷과 겉옷, 수놓은 모시치마, 배자, 답호, 장의(長衣), 창의(氅衣), 사규삼(四䙆衫), 남색(藍色)장복(章服)의 안감 등의 색과 여러 가지 비단, 영정(影幀) 신발의 채색, 종이에 묻은 타혈 등의 색명으로 기록되어있다. 

분홍은 ‘어린 아이’를 가리켜

고려사에는 ‘아동은 분홍 옷을 즐겨 입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의 분홍은 색명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兒童)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방(榜)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글의 내용(榜文‧방문)을 가리킨다. 따라서 분홍방(粉紅榜)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인 방문(榜文) 중에 있는 아동이라는 뜻이니, 과거급제자 명단 중에 있는 어린아이 이름, 즉 권문세도가들의 어린자제의 이름이 들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이것을 비난하는 것을 ‘분홍지초’(粉紅之誚)라고 기록되어 있다. 

◎윤취가 과거(科擧)를 주관해 선발한 자들이 모두 권세가들의 젖내 나는 아이들이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이것을 분홍방(粉紅榜)이라고 불렀다.<고려 우왕 11년> 

◎신이 이전에 듣기에 신라는 돌(石)로 망했고, 고려는 흙(土)으로 망했다고 합니다. (......) 그러나 우리나라는 너무 자주 과거를 시행해 끝내 망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를 베풀면 인재를 얻지만 지금의 감독관은 옛 사람과 달라 그 답안지를 볼 수 없으나 응시자는 알기 때문에 한 명의 인재도 얻지 못합니다. 단지 나이어린 사람도 그 방문(榜文) 속에 넣을 수 있습니다. 고려 말에는 분홍방(粉紅榜)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과거(科擧)의 불행이었습니다.<숙종 12년> 

◎과장(科場: 시험장)이 지나치게 어수선한 걱정은 이전에도 있었다. 고려 말에는 이것을 분홍방(粉紅榜)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어린이도 과거에 응시한 것을 말한다. (......) 대신들이 과거급제 발표취소를 논의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숙종 26년> 

◎평소에는 책 한 권 읽지 않고 글 한줄 짓지 않다가 과거(科擧)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 미리 길을 떠나 분주하게 고관대작 집으로 달려가서,(......) 체면도 돌보지 않고 시비도 따지지 않습니다. (......) 그러나 과거급제자 명단을 뜯어 성명을 부르면 예백지기(曳白之譏: 백지답안지에 대한 비웃음)와 분홍지초(粉紅之誚)로 이런저런 물의가 비등하니 유림(儒林)이 실망하고, 습속이 여기에 이르고 보면 장차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겠습니까?<고종 12년> 

분홍방(粉紅榜)과 분홍지초(粉紅之誚)는 오늘날에도 해당된다. 공정해야 할 각종 시험이나 콩쿠르와 같은 곳에서 특정 심사위원의 계파, 제자, 친인척, 또는 청탁에 의해 부정한 심사나 선발을 저지르는 일들이 사회문제가 된 일들이 많았고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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