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200] 잠 못 드는 그대에게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200] 잠 못 드는 그대에게
  • 신로사 한문고전번역가
  • 승인 2023.08.21 10:27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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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그대에게

오십 년을 살 사람은 백 년 살 걱정을 하고, 백 년 살 사람은 천 년 살 걱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은 또 즐거운 것이 아니다.

五十之人, 有百歲之憂, 百之人, 有千歲之憂矣. 此長生又不足樂也.

오십지인, 유백세지우, 백지인, 유천세지우의. 차장생우불족락야.

- 이만용(李晩用, 1792∼1863), 『동번집(東樊集)』 권4, 「매변(寐辨)」


동번 이만용은 부친 박옹(泊翁) 이명오(李明五), 조부 우념(雨念) 이봉환(李鳳煥)과 함께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 예원(藝苑)의 거장(鉅匠)이 이들이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가 맞이했을 정도였다(정원용, 『經山集』권12,「泊翁集序」). 이봉환과 이명오는 문재를 인정받아 1748년과 1811년에 서기와 제술관으로 통신사를 다녀왔으며, 이만용 또한 서얼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김유근(金逌根), 홍현주(洪顯周), 조두순(趙斗淳) 등 당대의 쟁쟁한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이 글은 「매변(寐辨)」, 즉 ‘잠에 대한 변론’이다. ‘해당(海堂)’이라는 이가 자신의 문하에 드나들던 ‘이생(李生)’에게 잠을 경계하는 글을 지어 주었다. 이생은 해당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학업에 대한 열의가 떨어질까 걱정하며, 낮에는 분음(分陰)을 아끼고 밤도 낮처럼 시간을 보냈다. 이 얼마나 듬직하고 훌륭한 청년인가. 이생의 태도가 존경할 만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만용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또한 미혹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찌르고, 기름을 태워 등잔불을 밝히거나 경침(警枕)을 쓰면서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생(生)을 해치는 큰 병’이라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 잠을 자고 나면 하루가 반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보면 사람이 진짜로 사는 것은 하루의 절반이고, 생애 전체로 따지면 수명의 절반이 된다. 반대로 만일 50년이 수명인 사람이 잠을 자지 않으면 100년을 살게 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만용은 이런 삶은 결코 즐겁지 않다고 말한다. 천하의 즐거움은 잠인데, 잠을 자지 않으려는 것은 즐거움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잠이 많은 것을 게으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다.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직장인은 야근을 하고, 수험생은 카페인의 힘을 빌려 졸음을 참고, 술집은 해가 뜨는 아침까지 영업을 한다. 현대 사회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잠과 싸우고 있다. 그 결과 수면 부채는 계속 쌓여간다.

이만용은 이 글에서 상념으로 인한 꿈을 꾸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느긋한 것이 중요하고, 만고의 성인과 백세의 영웅이 필부(匹夫)보다 못한 것은 근심과 즐거움의 차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사는 것, 그것이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라 말한다. 어쩌면 이만용의 말대로 이백(李白), 왕순(王珣) 같은 문인들은 잠을 자는 동안 문장이 진보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도 잠과 싸우는 것을 멈추고, 푹 자고 볼 일이다.

신로사 한문고전번역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 박사(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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