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서민 깔보는 LH… 특단의 조치 취해야”
[백세시대 / 세상읽기] “서민 깔보는 LH… 특단의 조치 취해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8.21 11:19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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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사람이 먹고 입는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잠자리이다. 현대인은 아파트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자기가 살 아파트가 언젠가 무너질지 모른다면 그 아파트에는 절대 입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철근을 빼먹고 아파트를 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관련자 파면은 물론이고, 더해서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부실아파트를 지었거나 설계·감리한 이들이 다시는 유사한 행위를 못하도록 업계에서도 추방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LH가 조직 쇄신을 위한 첫 조치로 전 임직원 8800여명에게 사표를 내게 했지만 실제로 사표를 수리한 건은 4명뿐이다. 그것도 2명은 임기가 끝났고, 나머지 2명은 다음 달 임기가 만료되는 이들이라고 한다. 어차피 그만둘 임원들을 앞세워 ‘사과 쇼’를 한 셈이다. 가장 책임이 큰 사장과 감사는 사표 제출 대상도 아니었다. 

LH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임직원 11명이 개발 예정지 주변의 땅을 사들여 막대한 차익을 올렸을 때도 가짜 ‘쇄신의 쇼’를 연출했다. 당시에도 임원 4명을 경질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이 중 2명은 임기가 며칠 안 남은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경질된 임원들에게 연봉 1억원의 사내 대학교수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는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 LH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지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사고원인으로 지목된 무량판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해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곧이어 조사 대상 아파트를 10곳 누락한 데다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숫자까지도 5곳이나 축소하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철근 누락 아파트의 설계·감리 담당했던 업체 3곳이 최근에도 입찰을 따낸 사실이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LH 출신이 대표 등으로 있는 전관 업체였다. 정부가 전관 카르텔을 없애기 위해 철근 누락 단지에 참여한 기업들의 실명까지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관 기업들이 일감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1일 경기 이천 장호원 아파트 감리용역 심사에서 최고점을 받아 수주한 컨소시엄에는 철근 누락 아파트 4개 단지의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던 A사가 포함됐다. 이 회사는 LH 고위급 출신이 설립했으며 현재 대표이사도 LH 출신이다. 역시 철근 누락 아파트 2곳의 설계를 맡은 전관 기업 B사도 같은 컨소시엄에 참여해 있다.

국가를 대신해 택지 개발, 주택 분양을 하는 LH는 임직원의 공공의식과 도덕성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어느 공기업보다 직업 윤리가 형편없다. 2년 전 직원 땅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일부 LH 직원들은 “우리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으냐”고 반발해 국민 분노에 불을 질렀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윤리의식이 결여된 공기업이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정권 코드를 잘 맞췄고, 연속 3년 A등급을 받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의 경고에도 LH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비대한 권한과 심각한 내부 칸막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LH는 공공 택지 조성 때 토지 보상과 공공주택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알 수 있고, 설계·감리 등 용역업체 선정에서 막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조직의 상관들이 퇴직 후 연관 기업으로 이직하고, 이를 후배들이 밀어주는 카르텔이 어느 조직보다 공고하다고 한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의 서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다. 한마디로 서민아파트 입주자들을 깔보고, 사람으로서의 예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이들이 사는 집이라 아무렇게 지어도 상관없다는 것이 이들에게 내재된 잠재의식이다. 따라서 파면 따위는 너무나 가벼운 처벌에 불과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더해 다시는 업계에 발을 못 들이게 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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