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돌봄은 누가 맡아야 하나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돌봄은 누가 맡아야 하나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3.08.28 13:22
  • 호수 8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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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배우자 돌봄이 자연스럽다 해도

배우자에게만 맡길 순 없어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재가돌봄 서비스의 질 높이고

다양한 주거형태 마련돼야

지난 7월 미국 유학 시절 출석했던 한인교회의 창립 40주년 홈커밍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에서도 몇몇 동문이 참석해 몇십 년 전 일들을 회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옛날 유학생들을 여러모로 도와주셨던 교민 어르신들에게 감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분들이 지금은 90세 가까이 되시고 질병과 노환으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셔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됐다. 

안타까운 일은 부부가 다 노쇠하신데 덜 병약한 배우자가 더 병약한 배우자를 돌보는 것이었다. 노인집합주택이나 요양원을 마다하고 간병을 혼자 감당하고 계셨다. 그동안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그런 방식으로 해로하는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매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동서를 불문하고 배우자 돌보는 일에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동반 자살하는 사례가 종종 뉴스가 되기도 한다. 배우자 돌봄은 노부부의 사랑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고령 배우자가 이 일을 홀로 떠맡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 세계에 인구 고령화가 가속됨으로 인해 이제 노인돌봄은 매우 중요한 국가 사회적 과제로 등장했다. 노인돌봄은 병약한 노인에게 간병, 요양, 재활, 복지를 포함해 전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노인돌봄에서 가족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병약한 배우자가 어느 상태에 이를 때까지 돌봐야 하는지는 매우 어려운 숙제이다. 자녀나 요양보호사, 간병인의 도움이 있으면 육체적 어려움은 다소 경감되겠지만 마음의 고통은 여전히 삶을 짓누른다. 

배우자에 의한 노인돌봄이 ‘좋은 죽음(Well-dying)’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겠다. 

첫째,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거주(Aging in Place, 이하 계속거주)’ 정책의 강화이다. 즉, 정부는 노인들이 노쇠하여 식사, 옷입기, 개인위생 등 일상생활동작이 어려워져도 그동안 살던 집 혹은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노인들은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온 집에서 계속 살기를 원한다. 

계속거주는 병약한 노인이 낯선 요양시설로 이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심리에 적합하며 재정부담 차원에서도 더 효율적이다. 계속거주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가족돌봄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한 재택돌봄(In-home Care)과 주간돌봄(Day Care)의 질이 강화되고, 집과 요양시설 사이에 다양한 주거형태가 마련돼야 한다. 건강, 소득, 가족관계에 맞추어 설계되거나 개조된 노인친화주택(Age-friendly Housing)도 보급되어야 한다. 

둘째, 돌봄 제공자의 소명의식이다. 길고 힘든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고령 배우자가 돌봄 제공의 책임을 맡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돌봄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배우자에 대한 가늠할 수 없는 애정과 헌신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수많은 역경을 같이 극복해 왔던 배우자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믿음직한 보호자가 돼 준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숭고하고 포기할 수 없는 소명이다. 

돌봄의 기간은 젊어서 부부로 만난 이후 가장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픔과 고통이 보살펴지는 동안 부부의 정신적, 영적 건강이 소실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성직자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셋째, 기동과 배변에 문제가 발생해 계속거주의 한계를 넘어가면 이제 요양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좋은 요양시설에서 노인돌봄의 철학은 상반된 두 개념인 의존과 자립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 즉 자립을 놓치지 않으면서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요양원(Nursing Home)보다 생활지원시설(Assisted Living Facility)을 선호하는 이유는 전자는 보호를, 후자는 자립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실제로는 별 차이가 없는 곳도 있다). 

좋은 요양시설의 또 다른 요건은 시설이 가족을 돌봄 제공자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배우자가 물리적으로는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지만 정서적으로는 계속 연합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인돌봄은 더 이상 개별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 배우자가 자처한다 해도 혼자서 떠맡을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정부는 돌봄사회(Caring Society)를 지향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회구성원을 참여시켜 정성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좋은 죽음의 로드맵을 그려야 할 때이다. 부모님과도 같은 교민 어르신들의 삶의 마지막이 평온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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