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 함께 봐야 더 흥미진진한 그리스와 로마 유물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 함께 봐야 더 흥미진진한 그리스와 로마 유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8.28 15:11
  • 호수 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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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그리스와 로마 유물을 동시에 소개하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진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각상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번 전시는 그리스와 로마 유물을 동시에 소개하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진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각상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공동기획… 조각상 등 문화유산 126점

비너스 묘사한 토르소, 보드게임 하는 망자의 모습 담은 석상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제작된 ‘그리스·로마 신화’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해 로마제국으로 이어진 신화를 말한다. 그리스와 로마는 신화를 함께 공유하며 로마는 그리스에게 문화적 영향을, 그리스는 로마를 통해 고대 문화와 역사 유산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모두 대상으로 하는 전시는 드물다. 2000년대 이후 국내서 열린 그리스·로마 관련 전시는 대부분 그리스나 로마 중 한쪽에 집중됐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에 ‘고대 그리스·로마실’을 신설해 주목받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빈미술사박물관과 공동기획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을 2027년 5월 30일까지 진행하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유산 126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9년부터 조성한 이집트실(2019~2022년), 세계도자실(2021~2023년), 메소포타미아실(2022년~현재)에 이어 개최하는 네 번째 세계 문명·문화 주제관 전시로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신화, 종교, 초상 미술, 장례 등의 주제로 나눠 살펴본다. 

먼저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래된 신화를 다룬다. 여기서는 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리스 도기와 점토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선보인다. 옳고 그름의 기준과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신화에서 찾은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유물이 1~3세기 로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현재 튀르키예(터키)에 있는 고대 도시 에페소스에서 진행한 유적 발굴 작업 중 발견된 토르소(머리와 팔다리 없이 몸통만 있는 조각상)인데,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가 욕조에서 나오는 순간을 묘사했다. 몸의 일부만 가운으로 덮여 있어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인간 신체에 대한 숭배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고대 그리스 문화권에서 중요한 주제였음을 잘 보여준다. 

또 그리스 도기에 표현된 신들의 모습을 통해서 여러 신과 그들의 에피소드를 확인할 수 있다.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의 모습, 아버지 제우스신의 무릎 위에서 아테나가 탄생하는 장면 등이 묘사돼 있다.

킬릭스(수평인 2개의 손잡이를 가진 술잔)에 그려진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
킬릭스(수평인 2개의 손잡이를 가진 술잔)에 그려진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

로마에서 사용한 등잔의 경우 로마에서 만든 물건인 만큼 신들은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고 숭배했지만, 그리스의 전통적 모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신의 모습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대체로 사람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신과 영웅은 나체로 표현했다. 곤봉을 든 헤라클레스와 아들 텔레푸스 대리석 전신상, 로마에서 포도주와 연극의 신으로 숭배된 마쿠스 흉상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초상 미술에 초점을 맞춰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운 두 문화의 관계에 집중한다.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점령당하는 역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문화는 로마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마가 그리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미술품을 전리품으로 가져가 공공장소나 개인의 저택에 진열해 자부심을 높이는데 사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마에서는 그리스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고, 원작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로마는 그리스 작품을 복제하기 시작했고 복제작이 활발하게 유통됐다. 개인의 저택에 진열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복제작의 크기는 대부분 작았다. 목욕을 위해 옷을 벗기 전의 모습을 담은 ‘아모르와 함께 있는 비너스’가 당시 고대 로마에 의해 복제되고 변형된 유형의 조각상 중 하나다.

마지막 ‘그림자 제국’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후관을 살펴본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을 여행, 이별, 잠 등의 단어로 표현했고, 이는 무덤에 나타난 조각에도 드러난다. 또 이들은 산 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유골함과 석관에도 글과 이미지를 새겨 죽은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보드게임을 하는 망자의 모습이 담긴 석상이다. 당시 보드게임은 대중적인 놀이였는데, 유족들은 그가 뛰어난 보드게임 실력자였음을 남기기 위해 이와 같은 석상을 제작했다. 

이와 함께 전시장 한켠에 음악평론가, 배우, 물리학자 등 각계 명사 8인이 전시품 중 한점씩 골라 감상법을 소개한 대목도 흥미롭다. 또 당대 대리석 조각에 색이 입혀졌음을 소개하는 영상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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