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아주 짧고 저렴한’ 喪
[백세시대 / 세상읽기] ‘아주 짧고 저렴한’ 喪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9.04 11:11
  • 호수 8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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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지인이 최근에 ‘아주 짧고 저렴한 비용’으로 모친상을 치렀다. 사망서부터 발인까지 3일 걸렸고, 장례에 소요된 비용은 총 370만원이다. 

고인은 93세로 자기 방 침대에서 누워 자듯이 눈을 감았다. 고인은 사망 직전 저녁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고 식후 간식으로 야쿠르트 하나를 다 비웠다. 고인의 장남인 지인이 그 시간에 한 집에 있었으나 모친의 임종 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만큼 고인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홀연히 떠난 것이다. 

지인은 사망 시간과 관련, “야쿠르트 병 마개를 따 건네 드리고 방을 나와 거실에서 10여분 TV를 보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모친 방에 들어가 보니 벽을 향해 모로 누워 계셨다”며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그 10분 사이에 숨을 거둔 것이다. 지인은 “돌아가시기 직전 손발이 유난히 차가웠다”고 기억했다.  

고인은 생전에 병치레로 가족을 힘들게 한 적이 거의 없다. 올해 초부터 때때로 ‘섬망’ 증세가 나타났지만 바로 제 정신이 되돌아왔다. 주위에서 “그 연세까지 살면서 가족을 (경제·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게 하고 세상을 떠난 것만도 유족에겐 복”이라고 한 마디씩 했다.

지인은 사망-입관-발인 등의 장례 절차를 사흘 만에 마쳤다. 빈소도 차리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연세가 많아 친지 대부분이 먼저 가셨고, 자식들도 모두 은퇴한 상태라 특별히 조문 올 사람도 없었다”며 “생전에 모친으로부터 사람들에게 알리면 부담을 갖게 되니 조용히 가족들끼리 치르라는 부탁의 말씀도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속전속결(?)의 상(喪)을 처음 접하고 느끼는 점이 많다. 우선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 새로웠다. 고인의 주변 사람 대부분이 사회활동을 마무리하고 연금 등으로 살아가는 형편일 테니 부음 소식은 경제적 압박감을 줄 것이 틀림없다. 지방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와야 한다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돈과 시간이 많은 부유층은 관계가 먼 얘기지만 이 시간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소한의 비용이란 점도 관심이 간다. 일단 빈소를 차리면 일반적으로 1500만~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서민에겐 큰 비용이다. 물론 조의금으로 상쇄되고, 일부에선 남는 경우도 있다지만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지인에 의하면, 총 370만원의 장례비용 중에서 염습·입관용품 123만5000원이가장 크고, 뒤를 이어 시설 사용료 84만원, 차량비용 90만원, 화장비용 70만원 순이다. 염습·입관용품 중 수의가 가장 큰 비용으로, 지인은 장례식장 측에서 제시하는 것 중 가장 낮은 가격대(40만원)를 택했다. 그밖에 관 30만원, 칠성판 2만원, 명정, 관보가 각 7만원이다. 명정(銘旌)은 너비 60cm, 길이 270cm 짜리 붉은 천에 죽은 사람의 관직, 성씨 등을 기록하여 상여 앞에 들고 가는 기다란 깃발이다. 요즘은 관보로 관을 씌우고, 다시 그 위에 명정을 덮는다.  

지인은 수의와 관련해 “어머니의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옷 중에서 즐겨 입던 옷을 입히려 하자 가족 중에서 ‘마지막 가는 길인데…’라면서 결사적으로 반대했다”며 “입관식 과정에 시신의 얼굴 부위를 복건·면목 등 여러 겹으로 싸는 걸 보면서 염습이 힘들고 까다로운 과정이란 걸 새삼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인은 화장(火葬)을 택했다. 장례식장 측은 서울·경기 인근의 화장터에 빈자리가 없다며 강원도 인제종합장묘센터로 가라고 했다. 

지인은 “장묘센터 사무실에 들러 사체검안서(사망진단서)를 내보인 뒤 화장증명서를 쓰려는 순간, 그곳 직원으로부터 ‘(고인이)기초수급자이면 무료’라는 말을 들었다”며 “유골도 장묘센터 내 일정한 장소에 뿌렸다”고 말했다.

부자들의 수의 한 벌 값(?)으로도 서민은 부담 없이 부모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인의 모친상을 통해 발견하고, 기자도 향후의 걱정·근심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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