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 열다’ 전, ‘박혁거세 어머니는 中 황실의 공주’라는 설화 소개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 열다’ 전, ‘박혁거세 어머니는 中 황실의 공주’라는 설화 소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9.04 14:29
  • 호수 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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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소개된 여성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조명한다. 사진은 이만익 화백의 ‘하백일가도’.
이번 전시에서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소개된 여성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조명한다. 사진은 이만익 화백의 ‘하백일가도’.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등장하는 사소·유화 등 여성 관련 설화 소재

 수로 부인, 처용의 아내 등 인간 이외 낯선 존재와의 교류 이야기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삼국유사’ 기이편에서는 경주 나정 우물가에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알이 있어 육부촌장들이 쪼개 보니 단정한 사내아이가 나와 박혁거세라 이름 짓고, 그를 키워 왕으로 추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제7편에서는 경주 선도산 성모설화를 통해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중국 황실의 딸인 사소라 기록하고 있다. 사소는 박혁거세를 낳은 후에도 선도산에 오래 살면서 많은 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삼국시대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통해 고대 사회 여성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은평구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29일까지 진행되는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전에서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등장하는 ‘여신’, ‘여왕과 왕후’, ‘신비로운 여인’ 등 다양한 여성들을 살펴본다.  

먼저 1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에서는 우리 민족의 어머니인 고조선의 ‘웅녀’,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인 지모신 ‘유화’, 신라 선도산의 산신이자 시조모(始祖母)로 알려진 ‘사소’를 살펴본다. 이중 유화는 물의 신 하백의 딸로 하늘의 신인 해모수의 아이를 가지게 됐다. 이 때문에 귀양살이를 가게된 그녀는 금와왕을 만났고 얼마 후 커다란 알을 낳게 된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훗날 고구려를 세우는 주몽이다. 유하는 아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오곡의 씨앗을 쥐어주며 떠나라고 했고 후에 고구려에서는 씨앗을 준 그녀를 지모신(地母神)으로 추앙하게 됐다. 전시에서는 이만익 화백의 ‘하백일가도’ 등을 통해 물과 하늘을 잇고 땅의 신이 된 유하의 행적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2부 ‘운명을 개척하다’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여성들을 다룬다. ‘삼국유사’는 신라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이 예견한 세 가지 일화를 통해 그의 성스러움과 슬기로움, 왕으로서의 권위를 강조한다. 

또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가야로 건너 온 ‘허황옥’은 공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수로왕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며 백성을 어질게 보살핀 왕후로 칭송받는다. 가야와 신라를 잇고 신라의 삼국통일에까지 기여한 ‘문희’는 신라 김유신의 둘째 누이이자 가야 왕족의 후손이다. 언니의 비범한 꿈을 사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춘추와 결혼한다.

삼국시대 문학에서는 현실 세계를 넘어 낯선 존재와 조우했던 신비로운 여성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3부 ‘낯선 존재와 만나다’에서는 이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대표적인 설화가 화랑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사랑을 다룬 ‘김현감호(金現感虎)’다. 호랑이 처녀는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오빠들의 벌을 대신 받는 동시에 연인이 벼슬을 받을 수 있도록 희생한다.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주인공 ‘수로 부인’, ‘처용의 아내’는 모두 빼어난 미인으로 인간뿐 아니라 낯선 존재들과 교류했다. 수로부인은 바다의 용에게 끌려갔다가 나오고, 처용의 아내는 용의 아들인 처용과 결혼하고 역신(疫神)과 동침한다.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운 ‘간통녀’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해석이다. 이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부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현실 밖 세계를 인정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와 공생의 삶을 지향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드러난다고 박물관측은 설명한다. 동시에 여성들의 대범함과 열린 마음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본다.

마지막 공간인 ‘이야기를 남기다’에서는 한국문학관의 대표 소장 자료를 소개한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역옹패설’ 등 중요한 문학 원본 자료, 향가와 설화를 모티프로 재해석한 근현대 작품,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다양한 버전의 ‘삼국유사’ 등을 볼 수 있다.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은 1512년 경주에서 다시 펴낸 ‘삼국유사’ 정덕본이다. 정덕본은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삼국유사’ 판본으로 평가된다. 

이 판본의 특징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목판을 섞어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려 때 만든 목판을 다시 쓰되 망가진 것은 새로 판을 제작해 보충했다. 목판으로 책을 찍으면, 오래 써서 나무 활자가 닳아버린 판은 종이에 찍힌 글자도 윤곽이 부드럽다. 반면 새로 만들어 찍어낸 쪽은 글자가 예리하고 선명하다. 

고려시대 목판도 있긴 했지만 정덕본 인쇄에 쓰인 건 대부분 조선시대에 새로 만든 판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삼국유사’ 수요가 꾸준히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외에도 전시에서는 한국의 설화로 작품 세계를 구성한 이만익 화백의 ‘처용가무도’와 ‘헌화가’를 비롯해 유엔(UN) 창립 50주년 기념우표로도 제작된 김원숙 화백의 ‘보름달 여인’ 등 관련 미술 작품과 미디어콘텐츠 작품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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