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한동훈과 조응천”
[백세시대 / 세상읽기] “한동훈과 조응천”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9.11 13:30
  • 호수 8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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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국회 대정부질의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9월 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차분한 목소리로 질의하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 장관의 군더더기 없는 답변. 요즘 서로를 악마화하는 여야 의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 의원은 공무상 비밀누설 유죄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두고 사법부의 판결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에 대해 질의했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 전 청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하다 비위 의혹으로 해임됐다. 이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 등 비리 의혹과 이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감찰 무마 의혹 등을 폭로했다. 그 결과 유 전 부시장은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확정 받았고,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돌연 문재인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이 김 전 청장이 피의자로 수사 중인데도 허위사실 유포·공무상 취득자료 배포 등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며 고발했다. 

대법원은 김 전 청장의 5가지 비밀누설 혐의 중 4가지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확정했다. 내부 고발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가피한 현상에 대해 처벌한 것이다. 일종의 괘씸죄인 셈이다. 국민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공익 신고자들의 용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공익 신고자가 벌 받는 해괴한 광경”이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 질문의 핵심은 사법부의 유죄 판결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이 공익 신고자가 아닌데 법무부는 왜 김 전 청장을 공익 신고자라고 하면서 사면했느냐이다.  

조응천 의원: “김태우 전 청장은 사면되자마자 법원 판결이 정치 재판이라며 자신은 공익 신고자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지금 보궐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했습니다. 근데 판결문을 보면 사법부는 1·2·3심 전 심급에 걸쳐 김 전 청장이 공익 신고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 사면 심사위원회의 위원인 검찰국장은 김 전 청장이 공익 신고자인 점이 감안됐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면권은 사법부 재판의 중대한 예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권을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김 전 청장에 대한 사면처럼 확정 판결에 대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부인하는 식으로 사용권이 행사돼서는 안 됩니다. 이거는 재판권을 좀 형해화하고,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훼손하고. 사법권의 뿌리를 흔드는 행태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장관님의 견해는 어떠십니까?”

한동훈 장관: “예. 개별 사면 역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정치적 결단으로  그 실무자로서 상세하게 말씀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중략)조국 전 장관이라든가 유재수 씨라든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일부 유죄 확정된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장관의 답변은 내부 고발의 법적인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김 전 청장의 신고로 조국, 유재수 등이 처벌받은 점을 고려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임을 참고해달라는 얘기다. 

여기서 다른 의원들 같았으면 한 장관의 답변에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언성을 높였을 텐데 조 의원은 “다음부터는 법무부에서 사면심사를 할 때 재판부의 확정판결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정중히 끝을 맺었다. 

국회에선 서로의 직과 격에 맞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논리에 입각해 질의응답을 해야 한다. 고민정·최강욱 두 민주당 의원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이동관씨’, 윤 대통령을 ‘윤석열씨’라고 호칭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무위원들을 아랫사람 추궁하듯 하대하는 야당 의원들은 한동훈·조응천 두 사람의 질의응답 장면을 반복·재생해 보면서 반성하고 배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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