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의 문양

부딪혀 깨어진 몸들이 흩어진다
한 번 상처 입은 것들은
속이 텅 빈다
그래서 서로 멀다
비가 오고 유리창에 빗방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비의 방울 하나가 부딪히면서 얼마나 많은 파편으로 튕겨졌는지 쉽게 가늠이 된다. 깨어져 상처 입은 것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려는 힘마저 모두 잃고 아무 것도 눈에 담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무심한 것인가. 오직 저 검은 테두리만이 제 세상의 울타리라고 믿고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기 위한 안간힘을 보여준다
빗방울은 물이 허공에 낳은 알들이다. 부디 저 물의 알들 하나하나가 부화하여 날아가기를. 그리하여 찬란한 세상을 마음껏 주유하면서 다시 생명을 살리는 모습으로 오기를.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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