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202] 생각의 계절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202] 생각의 계절
  • 지승연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3.09.18 09:52
  • 호수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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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계절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지 않으면 잃는다.

天下之理, 思則得之, 不思則失之.

천하지리, 사즉득지, 불사즉실지.

-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삼봉집(三峯集)』. 권4, 「사정전(思政殿)」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은 새 도읍지인 한양의 궁과 건물들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정도전의 문집에는 그렇게 이름 지은 의도를 담은 글이 실려 있는데, 위 문장 역시 그 중 사정전의 뜻을 설명해놓은 글 일부다.

사정전은 왕이 거처하며 정무를 수행하던 궁의 주요 건물 중 하나로, 이곳에서는 아침조회가 열려 나랏일에 관한 중요한 의논들이 오갔다. 낡은 기존의 통치를 개혁하고 새로운 왕조의 정치가 시작되는 건물인 만큼, 정도전이 사정전이라는 이름에 부여한 의미 역시 상당히 무거웠을 터다. 생각할 사(思)에 정사 정(政), 관리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시비와 이해가 뒤섞여 있는 세상일들 가운데 신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선인들이 생각을 발전시키는, 즉 학문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삼은 것은 독서였다. 주야장천 선대의 성인들이 남긴 책을 읽고, 그렇게 받아들인 지식으로 심신을 갈고 닦았다. 독서의 중요성을 이미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돌아가는 근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미디어 매체가 주를 이루는 현대 사회다. SNS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쇼츠 콘텐츠나 짤막한 카드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1분 지식 같은 채널이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찾고자 하는 정보는 대개 간결하게 요약·정리 되어 완성된 형태로 전해진다. ‘세 줄 요약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는 농담이 인터넷 상에 퍼질 만큼, 우리는 텍스트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수동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데에 익숙해져 간다. 어느 때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생각할 기회는 줄어든 역설적인 꼴이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직접적인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 우리 스스로 사고하고 필요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유 넘치는 가을은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들 한다. 가을을 맞아 바삐 돌아가는 사회를 떠나 책의 바다로 느린 휴가를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넘실대는 텍스트의 파도 사이로 마음껏 헤엄치며 섬을 찾아 숨을 돌리고 생각을 고르자. 도래한 생각의 계절, 이제는 우리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때다.

지승연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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