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김수철 데뷔 45년 공연”
[백세시대 / 세상읽기] “김수철 데뷔 45년 공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9.18 10:41
  • 호수 8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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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1980년대 초 기자생활을 시작할 당시 가요를 담당했다. 그 무렵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용필·나훈아·김연자 등과 가깝게 지내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조용필과 함께 코미디언 이주일 소유의 강남 리버사이드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자정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인근의 삼호아파트 조용필 침대 위에 곯아떨어진 뒤 다음날 아침 조용필 모친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신문사로 출근한 날도 있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못 찾겠다 꾀꼬리’ 등 조용필의 히트곡이 숲속의 새소리처럼 흔하게 들리던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노래가 등장했다. 사무실에서 원고지 칸을 열심히 메꾸고 있는데 동료기자가 다가와 귀에다 이어폰을 꽂아주고 ‘워크맨’을 틀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정녕 그대를’, ‘왜 모르시나’ 등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멜로디와 가사가 머리와 가슴을 강하게 압박했다. “누구 노래야?”하고 묻자 “김수철”이라고 했다. 명색이 가요 담당기자로서 처음 듣는 이름이라 자존심이 상했다. 이어 동료기자의 “재야에선 다 안다”는 말에 기분이 더욱 상했다. 

가수 김수철(66)과 인연은 이처럼 열등감으로 시작됐다. 첫 대면에 실망감이 컸다. 작은 키, 솜털이 비치는 앳된 얼굴 그리고 햇빛이 눈부신 듯 잘 뜨지 못하는 눈…. 연예인답지 않았다. 가사의 의미와 작곡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도 느리게 겨우겨우 답할 뿐 자기 노래에 대한 열정, 확신, 소신 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노래를 좋아해서 부르다가 만들었고,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는 가보다는 식으로 답했다. 노래를 떠나서는 영 호감이 가지 않는 가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를 잊었다. 30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TV에서 보았다. 여전히 앳됐지만 어딘가 강한 포스가 느껴졌다. 그 후광은 국악이었다. 국악이란 검을 한 손에 쥐고 대중 앞에 당당하게 선 것이다.

김수철은 10월 11일, 데뷔 45년 만에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40여년 갈고닦은 국악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지금까지 우리 전통음악을 현대화한 음악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키겠다는 목표를 키웠다고 한다. 그의 ‘기타산조’를 듣는 순간 그 말이 실감난다.

그는 단순한 기타 음으로만 사물놀이(꽹과리·북·장구·징)의 ‘복합된 소리’와 흥을 재현했다. 장구의 휘모리, 북의 합장단, 꽹가리의 굉음을 기타 선율로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그의 국악 현대화 성적표는 놀랍다. 무려 25개의 국악음반을 냈다. 그 중 1993년 영화 ‘서편제’ OST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한 주부는 “영화 내용도 감흥이지만 도입부에 삽입된 김수철의 곡은 이 시간에도 귀에 잔잔히 울릴 정도”라고 기억했다. 김수철은 이 곡에 대해서도 “그저 좋아하는 것, 호기심이 생기는 것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김수철의 국악 현대화 음반을 능가하는 음반이 없다. 자타가 인정한다. 김수철 은 “국악 현대화 음반 중에 내 음악처럼 웅장한 건 없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만큼 돈을 쏟아 붓는 사람이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열악한 국악계의 현실을 비판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 준비에만 15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 가장 큰 문제는 후원이다. 막대한 공연비용을 대줄 재력가를 찾아다녔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만큼 국악계가 열악하고 대중에 어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는 결국 자비를 택했다. 총 10억원이 예상되는 이번 공연에 십시일반 후원을 받고 나머지는 자비로 충당한다. 게스트로 나오는 김덕수·양희은·성시경 등이 노 개런티로 돕는다. 김수철의 탁월한 음악성과 평소 쌓은 인간관계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빚 질 걸 각오하면서까지 국악 현대화 공연을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김수철이 국악을 어떻게 현대화 했는가 궁금하다면 1998년 서울올림픽 전야제와 2022 한·일 월드컵 개막식 그리고 김덕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 ‘기타산조’를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고, 세종문화회관에도 한 번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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