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된 7개 가야고분군…잘 안알려진 가야 문화 재조명
유네스코 등재된 7개 가야고분군…잘 안알려진 가야 문화 재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9.25 13:57
  • 호수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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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부터 600여년간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번성했던 가야의 비밀을 품은 고분군 7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야고분군 중 유일하게 호남지역에 위치한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의 모습.
기원전 1세기부터 600여년간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번성했던 가야의 비밀을 품은 고분군 7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야고분군 중 유일하게 호남지역에 위치한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의 모습.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호남지역 소재… 가야의 규모 알려줘

시대에 따라 고분 형태나 조성 방식 차이… 고령 ‘금동관’ 등 보물 지정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가야 문화가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9월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7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하며 이렇게 평가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1995년 등재된 ‘석굴암·불국사’를 비롯한 모두 16건의 세계유산(문화유산 14건, 자연유산 2건)을 보유하게 됐다. 

가야는 기원전 1세기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시작돼 56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에 걸쳐 번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금관가야, 후기에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여러 국가로 나뉘는 바람에 통일왕국을 건설하지 못했다. 가야를 고구려‧백제‧신라 삼국과 함께 이른바 ‘사국시대’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가야의 경우 철기를 바탕으로 한 군사력을 앞세워 경남 서남부와 호남 동부 일대를 아우르는 큰 세력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대가야를 정복한 신라가 지배층을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했고, 사료를 제대로 남겨 두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가야 역사는 무덤 속에 묻혔다. 그나마 삼국사기 ‘고령군조’에는 “대가야국은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 520년간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가야고분군은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가야와 관련한 고분군이 780여 곳에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에 등재가 확정된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으로 구성된다.

무덤은 시대에 따라 형태나 조성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 안에 매장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당시 신분 질서와 사회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 유곡리와 두락리에 걸쳐 위치한다. 5~6세기 가야연맹 중 가장 서북부 내륙에 위치했던 고분군으로 가야연맹의 최대 범위를 드러내면서 백제와 자율적으로 교섭했던 가야정치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리산 줄기인 연비산에서 내려오는 언덕 능선을 따라 40여기의 무덤이 조성돼 있다. 전북 지역에 있는 고분군 중에서는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무덤에서는 가야뿐 아니라 백제의 흔적도 발견됐다. 가령 32호분에서는 백제 왕릉급 무덤에서만 나오는 청동거울, 백제계 금동신발 조각이 나오기도 했다. 무덤의 축조 방식도 가야와 백제 고유의 특징이 함께 보이는 경우가 있다. 토착 세력, 가야, 백제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함께 출토돼 5∼6세기 전북 동부 지역의 고대사와 고대문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지산동 고분군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위치한다. 고령지산동 고분군은 5∼6세기 가야 북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높은 구릉지 위에 밀집돼 있는데, 연맹의 중심 세력으로서 대가야의 위상과 가야 연맹이 최전성기에 도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대형 무덤은 순장자를 함께 묻은 것으로 파악돼 지배층의 무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백제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그릇, 일본 오키나와(沖繩) 산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 등은 당시 대가야의 활발한 대외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이중 1978년 32호분에서 나온 금동관은 대가야의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로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위치한 대성동 고분군은  1~5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문화를 잘 담고 있다. 조사 결과 당시 지배집단이 묻혔으며 고인돌, 널무덤, 덧널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됐다.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돼 시기적으로도 범위가 넓다.

이 일대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됐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 들여온 청동거울,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 솥 등은 당시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정치체가 중국, 가야, 일본 열도로 이어진 국제 교역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에 위치한 말이산 고분군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 무덤이 조성된 고분군이다. 말이산(末伊山) 자체가 ‘머리’와 ‘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지막한 구릉과 능선을 따라 꼭대기에는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 37기가, 경사면에는 중소형의 무덤이 모여 있다. 일제강점기 때 처음 조사했는데, 당시 봉토(封土) 지름이 39.3m, 높이가 9.7m에 이르는 무덤이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출토 유물 중에는 말이산 45호분에서 나온 상형 도기 세트가 유명하다. 지난해 10월 보물로 지정된 유물로 정식 명칭은 ‘함안 말이산 45호분 출토 상형 도기 일괄’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송현리에 걸쳐 위치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추정된다. 100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되며 출토 유물과 구조 양상을 볼 때 5∼6세기가 중심 연대일 것으로 파악된다.

이 고분군은 최근 발굴 성과와 연구 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는 유적이기도 하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은 그동안 도굴의 피해를 보지 않아 무덤 축조 방식과 유물을 부장하는 양상이 온전하게 확인된 주요한 무덤이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고성군에 위치한 송학동 고분군은 5세기부터 가야 연맹의 유력한 해상 세력으로 떠오른 소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 전체적인 숫자는 적지만 무덤을 군집해서 조성하는 가야 연맹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무덤이 총 1000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무덤이 총 1000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위치한 옥전 고분군은 낙동강의 한 지류인 황강변 구릉에 있는 4∼6세기 전반의 가야고분군이다. 무덤이 총 1000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지름이 20∼30m 정도인 18기가 한 지역에 밀집돼 있다.

이 고분군에서는 화려한 장식의 귀고리, 목걸이 등이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옥전은 ‘구슬이 많이 나는 밭’이라는 뜻인데 M2호분 무덤에서는 2000개가 넘는 구슬이 나오기도 했다. 28호분과 M4호분, M6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3쌍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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