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시나들’ 끝없는 도전… 이번엔 래퍼로 나서
‘칠곡 가시나들’ 끝없는 도전… 이번엔 래퍼로 나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0.10 11:21
  • 호수 8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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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익히고 새로운 시도 나선 어르신들
문해교실을 통해 한글을 배워 래퍼로도 도전에 나선 ‘수니와 칠공주’ 어르신들이 랩을 가르쳐준 안태기 주무관(왼쪽 아래 첫 번째)과 정우정 문해교실 강사(오른쪽 첫 번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해교실을 통해 한글을 배워 래퍼로도 도전에 나선 ‘수니와 칠공주’ 어르신들이 랩을 가르쳐준 안태기 주무관(왼쪽 아래 첫 번째)과 정우정 문해교실 강사(오른쪽 첫 번째)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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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아임 해피(I’m happy). 유어 해피. 에브리바디 해피.”

지난 9월 1일 유트뷰 채널 ‘수니와 칠공주’에는 7초짜리 영상이 올라온다. ‘수니와 7공주 랩 맹연습1’이라는 제목에 영상에서 박점순(85) 어르신을 비롯한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경로당 어르신들은 다소 어색한 몸짓과 함께 영어랩을 구사했다. 그런데 2주 뒤 같은 채널에 업로드 된 ‘연습 3일째’ 영상에서 어르신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스웨그’(멋) 넘치는 몸짓으로 “우리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라고 외치며 국내 최고령 여성 힙합그룹의 탄생을 알렸다.

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익힌 후 ‘시 쓰는 할머니들’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칠곡군 어르신들이 이번에는 ‘래퍼’로 도전에 나서며 주목받고 있다. 문해교실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진취적인 노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칠곡군은 2006년 2개 마을에서 성인문해교육 ‘찾아가는 늘 배움학교’를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23개 마을에서 22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한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13년간 2100여명의 까막눈 어르신들에게 개안의 기쁨을 선사했다. 

특히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개봉하면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영화에서는 칠곡군 약목면 어르신들이 늦게나마 한글을 배워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칠곡 어르신들은 2015년 발간된 ‘시가 뭐고?’를 시작으로 총 4권의 시집을 발간했는데 ‘시가 뭐고?’의 경우 8쇄까지 인쇄해 1만부 가까이 판매하기도 했다.

칠곡 어르신들의 도전은 코로나 시대에도 멈추지 않았다. 2020년 6월 문해교육을 받은 400여 어르신 중 개성 있고 따뜻한 글씨체를 보인 5명을 선발했다. 5명의 할머니들은 넉 달여 동안 1인당 A4용지 2,000장 이상에 연습해 필체를 정립했다. 그해 12월 16일 ‘칠곡할매글꼴’ 5종을 공개하며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따서 김영분체, 권안자체, 이원순체, 추유을체, 이종희체로 정했다. 칠곡군은 칠곡 할매의 마음이 담긴 글꼴을 무료로 배포했고 대통령 연하장에도 사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래퍼로 도전에 나선 신4리경로당 어르신들은 8월 말 ‘수니와 칠공주’ 창단식을 열고 본격 활동에 나섰다. ‘수니와 칠공주’는 그룹 리더인 박점순 어르신의 이름 중 마지막 글자인 ‘순’을 변형한 ‘수니’와 멤버 7명을 의미한다. 아흔이 넘은 최고령자 정두이 어르신(92)와 최연소인 장옥금 어르신(75) 등 8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의 평균 연령은 85세다.

수니와 칠공주는 랩 공연을 위해 자신들이 직접 썼던 시 7편을 랩 가사로 바꾸고 음악을 입혔다. ‘환장하지’, ‘황학골에 셋째 딸’, ‘학교 종이 댕댕댕’, ‘나는 지금 학생이다’ 등의 제목으로 여자라는 이유로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 한국전쟁 당시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오해했다는 ‘딱꽁 딱꽁’과 북한군을 만난 느낌을 표현한 ‘빨갱이’ 등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노래했다. 깻잎전을 좋아했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들깻잎’ 등도 선보인다. 수니와 칠공주는 초등학교와 지역 축제공연을 목표로 맹연습을 펼치고 있고, ‘김현정의 뉴스쇼’ 등 각종 매체에도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박점순 어르신은 “딸이라는 이유로 배우지 못한 게 평생 한이었는데 한글을 배우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또한 강원 화천군 간동문화센터 문해교실 어르신들도 최근 막을 내린 ‘온 세대 합창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온 세대 합창 페스티벌’은 아마추어부터 전문 합창단까지 50여팀이 참여하는 제법 큰 규모의 대회다. 최고령 오귀순(94) 어르신을 비롯한 간동문화센터 문해교실 어르신 20여명은 한글을 공부하는 틈틈이 노래 연습을 병행하며 대회 도전에 나섰다.

어르신들이 선택한 노래는 ‘우리의 소원’으로     1절은 통일을 염원하는 원래 가사를, 2절부터는 한글을 배우는 감격을 담아냈다. “우리의 소원은 한글. 꿈에도 소원은 한글 공부. 까막눈 열어줄 한글. 글눈을 떠보자”로 개사해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이태숙 어르신은 “초등학교도 못 다녀 길거리 간판을 읽을 줄도 몰랐다가, 한글을 배우며 자신감을 얻어 큰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난 9월 문해의달 기념 ‘제12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이 개최되면서 제2, 제3의 칠곡 어르신들 탄생을 기대케하고 있다. 올해 시화전에는 전국에서 1만7428명의 학습자가 참여해 삶의 역경, 한글 공부의 즐거움, 꿈과 희망 등을 작품으로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 결과 손가락으로 꼽으며 세어야 내릴 수 있던 지난날의 지하철 승차 경험을 회고하며, 안내자막을 읽어서 내리게 된 배움의 기쁨을 표현한 박문옥(69) 씨의 ‘내가 보네 내가 읽네’ 등 10편이 최우수상격인 글꿈상(교육부장관상)을 받는 등 197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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