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 ‘가족·까치·나무의 화가’ 장욱진의 60년 화업 조명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 ‘가족·까치·나무의 화가’ 장욱진의 60년 화업 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0.10 11:24
  • 호수 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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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김환기 등과 함께 2세대 대표 서양화가로 꼽히는 장욱진 화백의 60년 화업을 조명한다. 사진은 1976년 작 ‘가족’.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김환기 등과 함께 2세대 대표 서양화가로 꼽히는 장욱진 화백의 60년 화업을 조명한다. 사진은 1976년 작 ‘가족’.

이중섭‧김환기‧박수근 등과 활동한 2세대 서양화가… ‘가족’ 등 270여점 

윤곽만으로 표현한 ‘자화상’, 동양화 요소 결합한 ‘나무와 가족’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이중섭‧김환기‧박수근‧유영국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로 꼽히는 장욱진 화백(1917~1990)은 1955년 손바닥 만한 캔버스에 ‘가족’이란 작품을 완성한다.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지만 막내딸에게 바이올린을 사주기 위해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매한다. 이후 60여년간 행방이 묘연해져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이 작품이 최근 극적으로 발견돼 국내로 돌아왔다. 

‘장욱진 회고전’ 기획을 맡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일본 오사카 근교에 소재한 소장가의 오래된 아틀리에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그림을 직접 찾아내 극적으로 귀환시킨 것이다.

‘가족’을 비롯한 270여점의 작품을 통해 장욱진 화백의 60년 화업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2월 12일까지 진행되는 ‘장욱진 회고전’에서는 유화‧먹그림‧판화‧삽화 등 시기별 대표작을 통해 그의 미술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재구성해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모해가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1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을 살펴본다.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1938)와 문자를 추상화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1963년 작 ‘반월·목’(半月·木),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을 통해 초기 화풍의 형성과정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서울 내수동 집을 배경으로 네 명의 소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놀이’는 소녀들의 머리카락과 댕기, 아기의 얼굴 부분까지 빛의 흐름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또 ‘자화상’의 경우 모든 배경을 생략하고 얼굴, 몸, 팔다리를 필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했지만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둔 채 삐딱하게 선 자세가 장 화백의 평소 모습과 닮았다는 가족의 증언에 따라 자화상이라 불리고 있다. 

동양화적 기법을 도입한 1982년 작 ‘나무와 가족’
동양화적 기법을 도입한 1982년 작 ‘나무와 가족’

2부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에서는 장 화백의 분신 같은 존재인 ‘까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하는 ‘해와 달’ 등 장 화백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의 의미와 이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살펴본다. 

특히 나란히 걸린 까치와 나무를 그린 그림 3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첫 번째 작품은 1958년 그린 ‘까치’로 화면을 가득 채운 둥근 형상의 나무 속에 까치가 있다. 오른쪽에는 푸른 달도 걸려 있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데 이 긁어내는 작업이 마치 까치가 울어대는 소리를 연상케 해 ‘청각의 시각화’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로 옆에 걸린 ‘새와 나무’(1961)는 ‘야조도’로도 알려진 작품으로 새를 본질만 남긴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 것에서 첫 번째 작품과 차이를 보인다. 마지막 작품은 1961년 작 ‘나무와 까치’로 나무를 기호화한 상형문자 형태로 표현하고, 그 위에 까치를 그렸다. 화풍이 표현주의에서 기호주의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3부 ‘진진묘’(眞眞妙)에서는 장욱진이 남긴 불교적 주제의 회화들과 먹그림, 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장욱진과 불교와의 인연은 청년기부터 여러 일화가 언급되지만 실제로 불교 주제의 작품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진진묘’는 장 화백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다. 이 그림은 장 화백이 어느 날 새벽 명륜동 집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는 이 여사를 보고 영감을 떠올리고 화실로 내려가 일주일을 매진해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태를 즉흥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한 ‘심우도’(1979)의 경우 순간의 깨달음을 시각화한 선종화의 미학적 요소를 갖춘 수작으로 꼽힌다. 넓어지는 여백만큼 좁은 화폭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와지고 해학성도 엿보인다.

마지막 공간인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1970년대 이후 그의 노년기 작품들을 살펴본다.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켜 한국적 모더니즘(근대주의)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수묵채색화 같은 유화를 비롯해 특유의 비현실적 화면 구성 등이 정점을 이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 ‘나무와 가족’(1982)이다. 

화면 중앙 언덕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아빠, 엄마, 아들로 보이는 가족 세 명을 그려 넣은 산수인물도로, 나무를 그릴 때 한 방향으로만 파필(把筆, 붓 끝을 갈라지게 해 그리는 방법)을 구사해 바람 때문에 왼쪽으로 쏠린 나무 형상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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