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데뷔한 조경숙(80) 어르신
“촬영이든 편집이든 못해도 괜찮아요. 자신감만 있으면 됩니다. 수없이 실수하고 지적을 받아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조경숙(80) 어르신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비결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조 어르신은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실시하는 서울노인영화제 공모전 출품작 49편 가운데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12분 31초짜리 영상 ‘나와 망초’는 연립주택 벽돌 사이에 뿌리를 내린 한줄기 망초의 일생을 1년 동안 기록, 망초의 일대기를 통해 조 어르신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어르신이 망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8월 컴퓨터 수업을 받던 중 연립주택 벽돌 사이에 자라난 망초를 발견하면서다. 흙 한 줌 없는 벽돌 사이에 자라는 망초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져갔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지 1년. 자연스럽게 한 작품이 탄생됐다.
작업을 하면서 망초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됐다. 본래 이름은 ‘개망초’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 ‘나의 망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 어르신은 오른쪽 손가락이 남들과 다르다. 40대 초반 가족들과 잠을 자던 중 연탄가스가 누출돼 가족들을 깨우고 연탄을 갈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가족들의 목숨은 살렸지만 조 어르신의 오른쪽 손가락 3개는 잃었다.
성치 않은 손은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했다. 마음대로 숟가락을 들 수도 글씨를 쓸 수도 없었다. 글씨를 쓰고 싶어 10년 전 컴퓨터를 배우게 된 것이 지금의 조 어르신을 만들었다. 영화 감독의 꿈을 꾸기 시작한 때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위치한 어르신 정보화기관 ‘은빛둥지’를 통해 처음으로 영화를 배웠다.
처음 교육도중에 만든 3~4분짜리 동영상을 만들며 영화에 대한 흥미를 느꼈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지난해 제1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한 ‘DMZ’(비무장지대)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쉽게도 다리 수술 때문에 미완성돼 수상은 하지 못했다.
다시 도전한 작품은 ‘나와 망초’. 작은 체구와 불편한 손 때문에 평소에 카메라를 들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직접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1년 동안 직접 촬영한 동영상 테이프만 해도 50분짜리 3개, 사진 200여장에 이른다. 직접 배경음악은 물론 내레이션, 자막 편집 등 혼자 힘으로 해냈다.
불편한 손,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이 두 박자가 만나 밤늦은 작업은 예사가 됐다. 오전 9시 출근해 새벽 1시까지 퇴근하는 일도 비일비재. 마음에 들 때까지 영상을 자르고 붙이고 잇기를 반복한다. 영화공부를 시작하면서 텔레비전 방송이나 영화가 나오면 허투루 보지 않는다.
최근 조 어르신은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만찬을 즐겼다. 영화제에 대상을 수상한 일을 축하하기 위해 손자들이 축하 턱을 내는 자리였다.
조 어르신은 “손자 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할머니로 기억될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으로 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조 어르신의 ‘나와 망초’ 작품은 10월 14~16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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