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기초연금 전액 지급 가능한 이유”
[백세시대 / 세상읽기] “기초연금 전액 지급 가능한 이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10.16 11:25
  • 호수 8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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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누구나 출장과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씩은 갖고 있다. 좋은 추억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여성잡지 기자였던 지인은 수십 년 전 다녀온 출장이 지금까지도 흉흉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지인은 1980~1990년, 한 달에 한 번 여성독자 2명을 동반해 전국을 누비며 지역의 맛집과 볼거리 등을 취재해 잡지에 연재했다. 교외 휴게소 간판 중 ‘여기가 좋다는데’ 라는 간판을 볼 수 있는데 이 말의 원조가 지인의 여행 기사 제목이었다. 20대의 젊은 여성들과 2박3일간 함께 하며 그 지역의 향토음식을 맛보고 산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마감 관계로 하루 앞당겨 회사로 복귀하는 일이 생겼다. 며칠 후 회사 총무과에서 전화가 걸려와 “왜 1박2일 출장을 다녀왔으면서 2박3일 일정의 출장비를 청구했느냐”며 “받아간 출장비 중 하루 분을 반납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인이 다닌 회사는 출장비를 사전 정산했다.

지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 하루 출장비를 토해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출장비를 더 타내기 위해 고의로 일정을 부풀려 출장비를 청구한 것처럼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회사마다 출장 일정이 잘 지켜졌는지, 출장비는 투명하게 정산됐는지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일정이 늦춰지거나 당겨질 경우 여비 정산을 다시 한다. 그럴 경우 반드시 영수증 등 사용내역 자료를 첨부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 고위관료들의 출장 정산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업무의 연장인 출장을 나랏돈으로 한탕 질펀하게 즐기고 오는 해외여행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 미국 출장과 관련해 출장비 금액과 인원 등을 축소 보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 법무장관이었던 2021년에 6박8일짜리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그때 기념품 구입비 400여만원 등 총 1억713만원을 쓰고도 출장 직후 국외출장보고서에는 6840만원으로 축소했고, 수행원이 11명이었는데 5명으로 기록했다. 

8일간 1억원 넘게 썼다면 왕복 항공비를 제외하더라도 하루 1000만원 넘게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서민의 6개월 치 연봉만큼의 돈을 매일 흥청망청 써댔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모두 우리가 피땀 흘려 벌어서 낸 세금이다. 

인원도 왜 줄여서 보고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해외여행의 기회로 보고 가족·친지 등을 동반했는지 모르는 일이다. 박 의원은 이 출장에 김준형 한동대 교수를 데리고 갔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 국립외교원장을 지냈고, 이재명 대선 후보 당시 특보를 지낸 인물이다. 항공료와 숙박비는 스스로 부담했지만 체재비 명목으로 100만여원을 받았다. 김 교수는 박 의원과 함께 비영리재단인 맨스필드재단과 워싱턴DC 특파원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민간교수가 특파원 간담회까지 동행한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관료들의 극에 달한 호화·사치 출장은 박 의원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해외 출장 당시 가스공사 돈으로 1박에 260만원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기도 했다. 장관급 공무원의 해외 숙박비 상한 95만원의 2.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장관급의 숙박비를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많게 책정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건 가스공사가 임원과 고위 간부의 국외 출장 시 숙박비를 무제한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의 여비 규정을 둔 사실이다. 국민 혈세로 외국의 값비싼 호텔을 마음껏 이용하다니…. 도대체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지 기가 찰 노릇이다.

기초연금을 자격, 조건 없이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에 대해 일부에서 국가재정 고갈을 염려한다. 이는 정부 기관과 산하 단체, 국회와 사법부, 시민단체 등에서 혈세를 쌈짓돈 쓰듯 마구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고는 사정없이 털리고, 국가 재산은 유린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료들의 불법과 일탈의 일부만 줄이더라도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전액 지급은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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