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주도권 넘어간 영화계 플랫폼 전쟁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주도권 넘어간 영화계 플랫폼 전쟁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0.23 10:37
  • 호수 89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MP3폰 판매하는 ◯◯은 자폭하라.”

지난 2004년 5월 한국음원제작자협회와 유명 인기가수들이 ‘MP3’ 재생 기능이 들어있는 휴대전화기를 판매한 모 대기업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사람들은 200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물리적인 음반’을 이용해 음악을 들었다. LP판의 시대를 거쳐, 카세트 테이프, CD로 정류장(플랫폼)을 옮겨가긴 했지만 물리적인 음반을 구매해 듣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다 1997년부터 디지털 오디오 규격인 MP3가 대중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당시 각 가정에는 데스크탑PC가 필수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이 PC에서 MP3를 누구나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한 명만 음반을 구매해 MP3를 공유하면 이론상 전 지구인이 들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MP3 파일을 재생하는 휴대용 플레이어까지 등장하며 유명 가수들이 시위까지 나설 정도로 음악산업은 빠르게 위축됐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희박해 누구나 불법다운로드를 이용하던 시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음악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 플랫폼의 이동이었다. 

2007년 6월 애플사의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전 세계에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난다. 그리고 2009년 4G 이동통신 기술인 ‘LTE’가 상용화되면서 음악 재생 플랫폼에도 변화의 기류가 나타난다. 스마트폰에 MP3를 옮겨 듣던 사람들은 서서히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생겼고 때마침 저장 없이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멜론’, ‘벅스’ 등이 성장하면서 MP3를 내려받아 듣는 방식은 완전히 밀려난다. 이로 인해 음악산업도 서서히 회복세를 보였고 결국 K팝 신화의 원동력이 됐다.

1998년 11개의 상영관을 갖춘 CGV강변이 개관하면서 한국 영화시장은 크게 변화한다. 단관 극장들이 빠르게 문을 닫고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춘 중소극장 역시 경쟁에서 밀린다. 결국 복수 영화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멀티플렉스의 시대가 열렸고 영화 플랫폼 공룡이 된다. 몇 달에 걸쳐 100만 관객을 모았던 시대에서 한 달도 안 돼 1000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한국 영화시장을 키우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멀티플렉스 시대도 저물고 있다. OTT라는 거대 운석을 이겨내지 못하고 급속도로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다. 앞선 사례들만 보면 멀티플렉스 역시 구조조정을 통해 서서히 규모를 줄이다 끝내 문을 닫은 중소극장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서 알 수 있듯 플랫폼의 변화는 극복하기 어렵다. 극장이 어렵다고 호소하기보다, 플랫폼 이동을 최대한 늦추며 연착륙을 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