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44년만에 스크린으로 보는 12·12 쿠데타 전말
영화 ‘서울의 봄’ 44년만에 스크린으로 보는 12·12 쿠데타 전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1.20 14:06
  • 호수 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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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실명 아닌 다른 이름 사용… 상상력 더해 영화적 재미 높여

9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 긴박감 넘치게 연출… 황정민 등 배우들 호연

12‧12 군사반란을 처음으로 다룬 이번 작품은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진압군과 반란군의 긴박했던 순간을 다룬다. 사진은 극중 반란군 수괴 전두광(전두환)을 연기한 황정민.
12‧12 군사반란을 처음으로 다룬 이번 작품은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진압군과 반란군의 긴박했던 순간을 다룬다. 사진은 극중 반란군 수괴 전두광(전두환)을 연기한 황정민.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1979년 12월 12일’. 50대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평생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날짜다. 당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40대 이하 젊은 사람들도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날짜이기도 하다. 전두환·노태우 등이 속한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쿠데타) 사건이 일어난 날로,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익숙한 숫자다. 이 사건은 그간 꾸준히 다큐‧드라마로 제작돼 왔다. 2005년 MBC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다루기도 했지만 정작 영화로는 단 한 번도 제작된 적이 없었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첫 영화인 ‘서울의 봄’이 11월 22일 개봉한다. 이번 작품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는 데서 출발한다. 18년간 통치하던 그가 돌연 사망하자 서울 육군본부 벙커에는 장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비상국무회의가 시작되고 최한규 국무총리(정동환 분)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나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이후 계엄사령관인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 분)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 분)을 호명한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해 독자 세력을 은밀하게 키우고 있던 전두광이 자신의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전두광은 사건 이틀 뒤 TV를 통해 중간 수사 보고를 하며 국민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또 그는 항상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들과 무리지어 다녔는데, 이 모습은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고 여기는 정상호 참모총장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결국 정 참모총장은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자리인 수도경비사령관에 이태신 소장(정우성 분)을 앉힌다. 비육사 출인인 이태신 소장은 육사 출신으로 똘똘 뭉친 전두광의 하나회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장군이었다. 그 역시 정 참모총장과 마찬가지로 군인은 정치에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 이 소장은 정 참모총장의 지속된 부탁과 설득에 수도경비사령관 자리를 수락한다.

전두광 일당은 이 소장의 수도경비사령관의 부임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게다가 정 참모총장이 전두광의 동기인 노태건 9사단장(박해준 분)을 한직으로 좌천시키며 하나회를 축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전전긍긍한다. 궁지에 몰리린 전두광은 권력을 쥐기로 마음먹고는 지지세력을 모두 불러모아 비밀회동을 갖고 ‘생일잔치’ 작전을 계획한다.

그리고 12월 12일, 전두광이 이끄는 신군부는 정 참모총장에게 대통령 살해 공모 누명을 씌워 납치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에 이태신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진압군은 전두광과 하나회의 군사반란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실화를 모티프로 한 영화는 결말이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떨어트린다. 더군다나 12‧12 군사반란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직접 목도했던 부정적 사건의 경우 불쾌한 기억을 자극하기에 영화 관람의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이번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하되 허구를 가미하는 연출 방법으로 이를 영리하게 극복한다. 전두광(전두환), 노태건(노태우), 정상호(정승화), 이태신(장태완) 등 실존 인물의 이름을 조금씩 바꾼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름만 살짝 바꾼 익숙한 인물들을 이용해 관객이 마치 군사 반란이 일어난 그날 밤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극적인 인물, 장치들로 영화적 재미도 함께 선사한다. 특히 작품에서는 진압군과 반란군 간의 엎치락뒤치락 반전 연출에 많은 공을 들여 140분이 넘는 상영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작품의 몰입감을 높인 것은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다. 황정민은 권력에 눈이 멀어 반란을 주도하는 전두광을 완벽히 연기하며 시종일관 관객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특히 매번 4시간에 가까운 분장을 통해 ‘대머리’ 전직 대통령의 듬성듬성한 헤어스타일로 ‘파격 변신’하며 실존인물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나회 회동 당시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장면, 화장실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정우성은 전두광의 대척점에 서서 반란을 막으려 애쓰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탄탄하게 연기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외에도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역의 이성민, 9사단장이자 전두광의 친구 노태건 역의 박해준, 이태신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는 헌병감 ‘김준엽’ 역의 김성균 등 조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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